매일신문

[야고부] 겹단설기

둥글게 편 마시멜로를 같은 모양의 둥근 비스킷으로 둘렀다. 그 겉면은 부드러운 초콜릿으로 감쌌다. 초콜릿 코팅 속에서 숙성된 비스킷은 빵처럼 부드러워진다. 그리고 마시멜로의 쫀득함과 초콜릿의 달콤함이 어우러져 오묘한 맛을 만들어낸다. 빵인가, 과자인가. 아니다. 초코파이다.

비록 영어 이름을 가졌지만 초코파이는 국산이다. 1917년 미국 남부에서 시작된 '문파이'를 벤치마킹 하긴 했다. 하지만 초코파이는 1974년 태어난 '오리온 초코파이'가 원조다.

인기를 끌자 1980년대 너도나도 초코파이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상표 분쟁이 벌어졌다. 이때 법원이 내린 결론은 "'초코파이'라는 이름은 빵 과자에 마시멜로를 넣고 초콜릿을 바른 과자류를 뜻하는 보통 명칭"이라는 것이었다. 누구나 '초코파이'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초코파이는 러시아나 중국 등 과거 공산권 국가에서 특히 인기다. 한국보다 중국과 러시아에서 팔리는 초코파이가 훨씬 많다. 출시 40년을 맞은 지난해 전 세계에서 21억 개가 팔렸다. 올 1분기 글로벌 매출이 1천억원을 돌파했다. 단일 브랜드로 이런 실적을 일궈낸 것은 국내 제과 업계 최초다.

초코파이는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에도 흘러들어 갔다. 입주업체들이 북한 근로자들에게 간식으로 지급하던 초코파이는 최고의 인기품목이었다. 북한의 야시장에서 10달러에 거래된다는 소식도 나왔다. 초코파이는 먹을거리이기에 앞서 남북 교류의 상징이었다.

그런 초코파이가 개성공단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그 자리엔 '겹단설기'란 이름도 생소한 간식이 등장했다. 북한이 초코파이를 본 떠 만들었다는 과자류다. 겹단이라면 두 개의 층을 말하는 것이고, 설기라면 켜를 이루지 않고 한 덩어리가 되게 찌는 떡 종류로 볼 수 있다. '겹단설기'란 이름 앞에 '초콜레트'를 붙였으니 '초코파이' 아류임에는 분명하다. 그런데 맛도 포장도 영 아닌 모양이다.

북이 '초코파이'를 버리고 굳이 '겹단설기'를 택한 뒷맛이 개운치 않다. 초코파이가 옛 공산권 국가에 흘러든 것은 정치 체제를 떠나 경제 교류의 상징이었다. 북은 빗장을 더 걸고 있다. 초코파이조차 받아들일 수 없는 사회의 미래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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