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김병준의 대담] 김관용 경북지사

"입법·재정 중앙 정부가 수시로 참견, 무늬만 지방자치"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구미시장과 경상북도지사 각 3선, 도합 6선에 21년째 자치단체장을 하고 있다. 새삼스럽게 다시 소개할 이유가 없다. 다만 한 가지, 사범학교를 나와 초등학교 교사를 하다, 다시 대학을 졸업하고 행정고시에도 합격한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 적어 두자. 그만큼 열심히, 또 적극적인 인생을 살아왔다는 뜻이다.

오히려 왜 그를 찾았는지를 설명하자. 이 대담은 인물 중심이 아닌 과제 중심의 대담이다. 우리 사회의 현안들을 좀 더 차분하게 파 보자는 뜻을 담고 있다. 그래서 선출직으로 현직에 계신 분들은 되도록 피하고자 했다. 자칫 인물 중심으로 흐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선출직으로 현직에 있는 분을 찾았다. 이유가 있다. 그가 행정인과 정치인으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분권운동가로서의 역할도 크게 해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임제한으로 마지막 임기를 수행하고 있다. 분권 문제에 관한 한 가장 실감 나는 이야기를 해 줄 수 있다고 보았다.

그의 집무실을 찾았을 때 그는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대책 회의 중이었다. 관내에 첫 메르스 확진 환자가 발생한 상황이었다. 민방위복 차림으로 회의실을 나와 황급히 양복으로 갈아입은 그와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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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한 지방자치'

김병준: 구미시장 3선에 경북지사 3선, 합해서 6선에 21년째이다. 대단하다. 내리 공천을 받아 당선된 것도 그렇고, 중앙정치로 나가지 않고 지방을 지킨 것도 그렇다.

김관용: 고향에서 군수를 하고 싶었는데, 군수는 못 하고 시장에 도지사만 했다. 아시다시피 지방자치단체는 현장정치에 생활정치의 공간이다. 문제가 생기면 항상 주민이 답을 주었다. 주민의 평가 또한 금방 나온다. 야전사령관으로 젊음을 다 보낸 기분이다.

김병준: 잘하셨으니 여기까지 오신 것이라 생각된다.

김관용: 주민들의 이해와 지지가 지켜주었다. 또 국가로부터도 많은 것을 받았다. 빚을 많이 지고 산다.

김병준: 하지만 어려운 일도 많았으리라 생각된다. 당장에 권한부터 문제가 되었을 것 같다. 무슨 일을 하자면 권한이 제대로 있어야 일을 할 텐데 그렇지 못하다는 지적이 많다.

김관용: 그렇다. 그 점에 있어 우리는 '불행한 지방자치'를 하고 있다. 시장 군수나 시'도지사를 선거로 뽑기는 하는데, 막상 선출된 사람들이 마음껏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권한이 제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늬만 지방자치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김병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김관용: 우선 입법권부터 중앙정부의 법과 영이 정한 것을 넘을 수 없다. 법은 그렇다 하더라도 영까지 넘을 수 없는 게 문제다. 이를테면 행정조직 하나 마음대로 고칠 수가 없다. 국을 몇 개로 하고 인원을 얼마로 하고 하는 것 등이 영에 다 정해져 있다. 필요에 따라 늘리기도 하고 줄여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

김병준: 재정 부문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김관용: 우선 수시로 재정자주권을 침해한다. 예를 들어 취득세는 지방의 가장 중요한 재원인데 이걸 중앙정부가 수시로 감면했다 풀었다 한다. 즉 경기부양의 수단으로 쓰는 것이다. 물론 세수가 줄면 다른 방법으로 보전해 주기는 한다. 그러나 돈만 주면 다인가. 이런 걸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발상 그 자체가 문제다.

김병준: 재정력이 약한 것, 즉 돈이 없는 것도 문제다.

김관용: 자체수입 기반이 매우 약하다. 경북도 내 23개 지방자치단체 중에서 지방세 수입만으로 공무원 봉급을 못 주는 단체가 17개다. 이 상태로 지방자치가 제대로 될 수 있겠나.

김병준: 중앙정부로부터 지방교부세와 보조금 같은 지원을 받지 않나?

김관용: 받는다. 하지만 그런 만큼 운영상의 자율성은 떨어진다. 특히 보조금은 중앙정부가 이렇게 써라 저렇게 써라 일일이 정해서 준다. 옴짝달싹할 수가 없다. 게다가 이걸 받으려면 분담금, 소위 매칭펀드를 대야 한다. 그나마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까지 매칭펀드로 내 놔야 한다는 말이다. 재정운영의 자율성은 그만큼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김병준: 중앙정부로부터 그렇게 받아 쓰는 게 어느 정도 되나?

김관용: 사정이 좋은 구미시의 재정자립도가 60% 정도, 재정이 나쁜 영양군은 4.5% 정도밖에 안 된다. 경상북도 역시 30%가 안 된다. 그 나머지는 중앙정부로부터 받아쓰고 있다.

김병준: 최근에는 의무지출도 늘어나고 있다. 즉 기초연금이나 보육 등 중앙정부가 정책을 정하면 지방자치단체는 자기 의사와 관계없이 무조건 지출해야 하는 일이 늘고 있다.

김관용: 복지 부문에 그런 게 많다. 복지비용은 기본적으로 중앙정부가 책임져야 한다. 다른 나라들도 다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런데 이걸 재정이 열악한 지방자치단체에 전가하고 있다. 매칭펀드를 대라는 거다.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도저히 못 하겠다고 했더니 이를 중앙정부에 대한 저항이라 한다.

김병준: 결국 권한도 약하고 돈도 없다는 말 아닌가?

김관용: 그러니 뭘 할 수 있겠나. 이런저런 행사나 하는 수밖에. 그나마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많은 경우 실패해서 욕을 먹는다. 현장에 가보면 정말 불쌍할 정도다.

▷왜 못 고치나?

김병준: 왜 이런 상황이 계속되고 있나? 우선 지방에서 잘못하고 있는 부분이 있지 않나? 실제로 권한을 남용하고, 돈도 낭비하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김관용: 부정하지 않는다. 부정도 일어나고 호화청사를 지어 말썽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시민사회와 언론도 있고 감사원도 있다. 그 나름의 통제장치가 많이 있다는 말이다. 또 그래서 호되게 혼이 나면서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역사가 발전하는 과정에서의 비용이라 생각할 필요가 있다.

김병준: 그렇게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김관용: 사실 다른 나라들은 봉건적 역사가 있다. 따라서 분권체제에 비교적 익숙하다. 단점도 알지만 장점도 안다. 그러나 우리는 내내 중앙집권체제 아래 있었다. 자연히 분권을 뭔가 불안한 것으로 여기고 작은 문제만 생겨도 바로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김병준: 바로 그런 점에서 지방 쪽에서 자신을 다지는 노력을 더 해야 한다. 또 분권운동도 좀 더 적극적으로 해 나가야 한다. 예컨대 시도지사협의회 등에서 중앙정부에 대해 보다 공격적인 건의를 해나가야 한다.

김관용: 건의 같은 건 많이 했다. 시도지사협의회 대표로 있을 때는 1천100만 명의 서명을 받아 건의하기도 했다. 남대문시장과 서울역을 쫓아다니며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앙 언론들부터 관심이 없더라.

김병준: 중앙언론 역시 관료집단이나 국회의원들과 같이 중앙집권 쪽을 선호할 이유가 있다.

김관용: 다른 나라들을 봐라. 연방체제로 강력한 분권적 질서가 자리 잡고 있다. 또 프랑스처럼 단일국가인 경우도 헌법에 분권형 국가임을 선언하고 있다.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 그렇게 하는 것이다. 우리도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김병준: 동의한다. 분권적 질서를 통해 지역공동체를 살려 내야 하고, 지역과 지역이 선의의 내부 경쟁을 하는 체제가 되어야 한다.

김관용: 지방정치인이 중앙정치인에 비해 좀 떨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주민이 뽑은 대표들이다. 또 이들을 통제하는 시민사회가 있다.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성장하고 효율화되어 가는 거다. 이를 인정해야 한다.

김병준: 이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주민들부터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잘 믿지 않는다.

김관용: 지방정치인이나 지방공무원을 믿는 게 아니라 주민들을 믿어야 한다. 주민들 스스로도 스스로를 믿어야 한다. 우리 주민들 대단하다. 도청 이전이 그 예인데, 주변에서 모두들 추진하지 말라고 했다. 탈락지역에서 표가 나오지 않을 거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떨어진 지역에서도 표가 나오더라. 포항에서도 78% 득표를 했다. 주민들이 이렇다. 이것 믿고 행정을 한다.

▷'더 뛸 수 있도록 해 달라'

김병준: 주민을 믿고 행정을 한다? 뭔가 과감하게 추진하는 것이 많다는 이야기인데 어떤 것이 있나?

김관용: 많다. 우선 문화를 매개로, 또 상품으로 해서 세계로 나가는 일을 하고 있다. 전임 도지사 때부터 해 오던 일이다. 문화가 지금 당장에 뭘 주느냐? 아니다. 그러나 글로벌 사회에서 문화발신지로서의 위상 강화가 향후 많은 것을 의미하게 될 거다. 그야말로 주민들을 믿고 하는 일이다.

김병준: 주민들은 물론 중앙정부, 그리고 나아가서는 외국 정부도 설득해야 하는 일이다.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김관용: 그런 점이 있다. 경주 엑스포만 해도 중앙정부의 지원이 잘 이루어지지 않아 애를 먹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독대해서 뜻을 이뤘다. 외국 정부를 접촉하는 일도 그렇다. 쉽지 않을 때가 있다. 예컨대 중국 시안, 즉 당나라 시대의 장안에 실물 크기의 다보탑을 설치하고자 했는데 쉽지가 않았다. 꼬박 2년을 설득해서 한 달 전에 드디어 설치했다.

김병준: 문화든 산업이든 지방자치단체가 이렇게 글로벌 시각을 갖는 게 매우 중요하다. 특히 도와 같은 광역자치단체의 경우는 그렇다. 생활자치를 넘어 산업경제 자치의 영역으로까지 가야 하기 때문이다.

김관용: 산업 부문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예를 들어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포항 쪽의 철강산업과 구미 쪽의 IT산업도 어려워지고 있다. 조심스럽게 지켜보고 있다. 그러면서 새롭게 도전할 만한 신산업도 찾고 있다.

김병준: 옳은 일이다. 이런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면 국가도 지역도 낙오자가 된다.

김관용: 이 역시 하나의 예가 되겠지만 구미 경산 영천 포항 등을 연결해서 탄소산업 클러스터를 추진할 생각이다. 도내에 도레이를 비롯해 관련 기업이 2천 개가량 있다. 자동차 프레임, 비행기 날개, 골프채 등 관련 산업이 크게 성장할 수 있다. 자동차만 해도 탄소섬유 소재로 바꾸면 그 무게를 반 가까이 줄일 수 있다. 기술혁신과 생산체제 혁신으로 원가가 내려가게 되면 엄청난 수요가 발생하게 될 것이다.

김병준: 광역자치단체가 추진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 않겠나.

김관용: 가능하다. 도레이만 해도 구미에 1조6천억원을 투자했다. 이런 게 큰 힘이 된다. 또 산업통상자원부의 협조와 지원을 받기 위해 뛰고 있고, 일본이나 우리나라 대학들의 협조를 얻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권한도 돈도 적지만 이들을 설득하고 연계해 나가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믿는다.

김병준: 민선체제이니 이렇게 열심히 뛴다는 생각이 든다.

김관용: 더 뛸 수 있게 해 줬으면 좋겠다. 이를테면 북한문제나 영토문제 등에 있어서도 지방자치단체들이 할 수 있는 건 좀 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

김병준: 무슨 이야기냐?

김관용: 오는 8월 경주에서 실크로드상의 국가들을 초청해서 '실크로드 경주 2015'를 개최한다. 여기에 북한 공연단을 초청하고자 한다. 고대 실크로드가 번성한 시대 신라의 경주와 고구려의 평양은 실크로드 도시로 활발히 교류했다. 그래서 이번 행사에 평양을 초청해 문화로서 교류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통일의 발판이 더 단단해질 수도 있고. 그래서 얼마 전 이희호 여사를 찾아뵈었다. 이쪽 저쪽 모두를 설득하는 데 도움을 주십사 부탁드렸고, 그러시겠다는 대답을 들었다.

김병준: 영토문제는 뭔가? 독도?

김관용: 독도에 입도지원센터를 구축하고자 한다. 우리 영토임을 더욱 확실히 함과 동시에 다른 나라 어선들이 태풍을 만나면 긴급히 피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중앙정부가 하면 일본과 외교적 분쟁이 생기겠지만 지방자치단체가 하는데 뭐라 할 수 있겠나. 이런 걸 좀 할 수 있도록 해 주면 좋겠는데, 중앙정부가 일일이 하라 하지 마라 하는 체제이니 그 책임까지 중앙정부가 지게 된다. 그러고는 못 하게 막는다.

김병준: 다시 권한의 문제인데 결국은 중앙정부가 지방자치단체와 지역사회, 그리고 주민을 믿지 못해서 그런 거다. 또 권한을 놓기 싫기도 하고.

김관용: 정말 열심히 하고 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협력해서 새마을운동 세계화사업을 통해 국가브랜드를 높이고 있고, FTA에 대비해 지방자치단체 특별위원회와 농민사관학교를 만들어서 농민들의 경쟁력을 강화시키는 일도 하고 있다. 모두 지역을 위한 일이자 중앙정부를 돕는 일이다. 왜 좀 더 뛸 수 있게 해 주지 않나?

김병준: 간섭하고 통제하는 대신 더 뛸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을 만들라?

김관용: 그렇다. 이를테면 균형발전이다. 지역 간의 불균형이 세원의 편재 등 많은 문제를 낳고 있다. 한때 우리 경제를 성장시키는 데 있어 긍정적 요소가 없지 않았지만, 지금은 여러 가지 점에서 부담이 되고 있다. 중앙정부는 자원의 효율적 배분, 이런 데 더 큰 신경을 써야 한다.

김병준: 균형발전 문제는 그 자체로서도 매우 중요하다.

김관용: 그렇다. 글로벌 사회에 있어서는 지역과 도시의 경쟁력이 곧 국가의 경쟁력이다. 지역과 지역이 경쟁하고 도시와 도시가 경쟁한다. 전 국토가 골고루 발전해서 모든 지역이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

김병준: 결국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싸움이 될 수도 있다.

김관용: 그런 점에서 동서갈등은 실없는 일이다. 오히려 추풍령 이남의 8개 시도가 동서 가리지 않고 뭉쳐 비수도권 발전을 위해 뜻을 모아야 한다. 다행히 젊은 세대에는 동서갈등 문제가 거의 의미가 없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균형발전이 해결되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김병준: 지방분권에 지역발전, 그리고 지역갈등 문제까지 이야기해 주셨다. 감사하다.

2015년 6월 12일 오후 5시

경상북도 도지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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