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미화 칼럼] 경북 여성 김송자처럼

중앙 부처 첫 차관이 된 경북 여성

남성 중심 사회 되돌리기 반평생

여성 리더는 전략적 지혜 강화를

정부 수립 후 50년 만인 1998년, 중앙 부처 차관보급(서울지방노동위원장, 1급 관리관)에 경북 약목 출신의 여성 김송자가 임명됐다. 신의 은총이라고까지 할 정도로 직업 공무원의 꽃인 1급에 여성, 그것도 경상도 여성이 임명된 것은 기적이었다.

김송자는 공무원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남존여비사상을 뽑아버리자는 일념을 지녔던 '노동부의 대모(代母)'로 동년배 남성 국장들에게는 무지막지한 추진력과 시대를 앞서 내다보는 혜안 때문에 두려운 존재였다.

"공직 사회에 들어온 순간, 인간이 아니라 여자임을 뼈저리게 느끼고, 내 대(代)에서 그런 차별을 뿌리 뽑겠다"고 목표를 세운 김송자는 '못 말리는 여자' '악쓰는 여자'로 불리며 여성 일자리 창출에 꼭 필요한 남녀고용평등법과 육아휴직법 제정에 앞서 나섰다.

밀물처럼 호황기가 찾아와 우리 경제 전반이 활황을 보이던 1980년대 초에도 공단의 여성 근로자들은 소위 '벌집'이라 불리는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살았다. 샤워장과 냉난방 시설이 갖춰진 대구 제일모직 기숙사에 해외에서도 시찰단이 오던 시절 김송자는 가난한 여공들을 위한 '근로자 임대 아파트' 사업을 구상해 성사시켰고, 국민이 불편하지 않도록 다리를 놓고 항만시설을 갖추듯이 여성에게도 육아휴직을 주거나 탁아소를 세워주는 것은 국가 기간산업에 다름 아니라며 관련법 제정에 앞장선 '경북 여성'이었다.

상층부로 갈수록 거의 남성인 공무원 사회에서 희귀종으로 꽃처럼 우아하게 대접받으며 편하게 살 수도 있었지만, 언제나 싸움닭처럼 관행과 싸우고 국회의원들과 입을 맞춰 속기록에 근거를 남기며 전국에 10개의 탁아소를 만들도록 작전을 쓴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여성을 위한 성과만 남긴 것은 아니다. 1995년에는 언론인 출신인 남재희 노동부 장관의 명령을 받고 조(兆) 단위 산재보험료를 다루는 근로복지공단을 발족시켜 산재 업무의 행정적'법적 절차를 마무리 짓고 그해부터 고용보험 업무를 출범시켰다. 마침 근로복지공단을 제대로 만들었기에 IMF 위기 때는 실업자에게 실업급여를, 사업주에게는 고용유지금을 지급하여 경제국치를 벗어나는 디딤돌 역할을 톡톡히 했다.

"서서 오줌을 누는데도 안 됩니까"라면서 연이은 승진 탈락을 항의(?)했던 김 전 차관은 악바리 근성과 전략가적인 지혜를 겸비하여 직업 공무원 출신으로 여의도에 입성하여 17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필드에서 지독한 서바이벌 게임을 치러야 했던 김 전 의원은 의외로 남자 리더들은 외압에 약하고, 여자 리더들은 전략에 약하다고 했다.

겨우 노동부 차관과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활동한 여성 리더 김송자의 실전 경험도 이렇게 치열할진대, 남성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첫 여성 대통령일 뿐 아니라, 49%의 절대적인 반대자들이 호시탐탐 먹잇감처럼 노리고 있음을 모를 리 없는 박근혜 대통령은 이보다 훨씬 농도 진한, 훨씬 더 치밀한 전략과 정치 철학을 쌓아두고 대비하고 있을 텐데 왜 이럴까?

툭하면 걸려서 넘어진다. 세월호 사태가 터지자마자 외신들이 지적했듯이 이번 메르스 사태 역시 행정의 실기(失期)와 병원 정보 공개를 늦춘 시대착오적 비밀주의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 정확한 정보가 없으니 가뜩이나 과학적 합리적 행동보다 감성적 대중주의에 쉽게 휩쓸리는 성향의 시민들이 괴담에 빠져들거나 자칫 국가 부도가 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한다.

이제는 방법이 없다. 똑똑한 학생이 선생을 키운다고 했다. 시민들이 대한민국 사회가 좌초하지 않도록 붙드는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 괴담을 자제하고, 스스로 위생을 관리하고, 일상생활도 해야 한다. 광복 70년, 어떻게 일으켜 세운 대한민국인데 세계의 조롱거리로 전락하도록 버려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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