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달성공원의 옛 명성을 보여주는 기록이 하나 있다. 40여 년 전 딱 이맘때쯤 기사다. 1973년 6월 18일 자 한 일간지 기사에서는 하루 전날인 일요일의 전국 주요 명소 방문객 수를 집계했다. 서울 뚝섬이 15만7천여 명으로 가장 많았고, 경기도 안양유원지(8만2천700여 명)에 이어 달성공원이 6만8천900여 명으로 3위였다.
달성공원 상인들의 기억도 이와 일치했다. 상인들은 1970, 80년대가 달성공원의 최전성기였다고 입을 모은다. 믿기지 않겠지만, 전국에서 관광객이 모여들었고 이들을 태운 관광버스가 달성공원 앞에 가득 도열했다. 당시 달성공원 앞 상점 대부분이 관광기념품을 파는 곳이었을 정도다. 달성공원이 사람들의 발길을 모은 핵심 콘텐츠는 단연 동물원이었다. 달성공원 동물원은 1970년 5월 5일 문을 열었고, 이후 달성공원은 인기를 이끌었다. 1970년 5월 1일 서울 창경원에 살던 코끼리와 꽃사슴 등 동물 22마리가 이주해 와 달성공원 동물원의 첫 가족이 됐다는 소식을 시작으로 달성공원 동물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대구뿐 아니라 전국적인 뉴스거리가 됐다.
◆100년 역사, 달성공원 철학관 골목
모두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내용들이다. 이제는 관광버스가 운집하는 일도 없고, 곳곳 상점도 외지 손님들로 북적이지 않는다. 낡고 초라해진 동물원도 더는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달성공원의 성쇠를 묵묵히 지켜봐 온 골목이 있다. 100년 역사를 가진 철학관 골목이다.
달성공원 입구 맞은편에는 20여 곳 철학관이 있다. 좀 더 정확히 구분하자면, 철학관이 대부분이고 '~도사' '~보살' '~선녀' 같은 간판을 건 점집도 있고, 타로점을 보는 곳도 있다. 보기에 작지 않은 규모지만, 휴점 중이거나 간판만 건 채 아예 문을 닫은 곳이 몇 곳 있다. 이곳에서 백운철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최영태 원장은 "철학관 골목도 달성공원의 최전성기였던 1970, 80년대에 함께 흥했다. 지금보다 손님이 많았다"고 했다. 최 원장이 1979년 백운철학원 문을 열 당시 주변에는 지금과 달리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자리한 노점 철학관이나 점집이 많았단다.
골목은 노쇠했지만 젊은 세대의 발길은 끊이지 않고 있단다. 이들은 무엇을 물으러 올까. 요즘 청년들의 고민을 그대로 반영한다. 최 원장은 "취업이 쉽지 않은 시대인 까닭에 시험운과 취직운을 많이 물으러 온다. 물론 과거나 요즘이나 청춘남녀들의 주된 관심사는 연애다. 삼각관계까지 포함하는 다양한 연애 문제 관련 물음을 들고 온다"고 했다.
사실 철학관은 모든 세대를 손님으로 삼는 몇 안 되는 업종 중 하나다. 길흉화복을 점치는 사주를 비롯해 갓난아기의 이름 짓기부터 청춘남녀의 길한 결혼 날짜는 물론 죽음 이후의 장택일(묘지 이장일)까지, 사람의 전 생애를 다룬다. 아이들과 그 부모, 이제는 만남의 장으로 삼아 드나드는 노년들까지, 대구의 모든 세대가 모이는 곳인 달성공원과 닮았다. 최 원장은 "달성공원 앞 철학관 골목이 대구의 모든 세대가 즐겨 찾는 명물골목으로 길이 남았으면 한다"고 했다.
◆명맥 이어나가는 작은 골목들
이 밖에도 업소 몇 곳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수십 년 된 작은 골목들이 대구 도심 곳곳에서 여전히 손님들을 맞고 있다.
종로에는 금고골목이 있다. 대구 중부경찰서에서 남쪽으로 도로를 건너 종로로 진입하는 입구에 5곳 금고가게가 모여 있다. 수십 년 된 오랜 경력의 금고기술자 출신들이 주인인 곳이 많다. 지금은 직접 생산하지는 않고, 수도권과 부산 등지에서 금고 제품을 들여와 판매하고 있다.
동성로 학사골목은 1970년대부터 유명해진 주점 골목이다. 안주 하나만 시켜도 나오는 푸짐한 밑반찬이 특징이다. 골목 이름에 붙은 '학사'는 대학생을 가리키는 그 학사(學士)가 맞다. 주점 주인들은 대학생들의 가벼운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저렴하지만 푸짐하게 술과 안주를 제공했다. 1980년대에 학사골목은 운동권 학생들의 아지트로도 불을 밝혔다. 이 골목에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20대 젊은이들과 30대 직장인들이 많이 찾았다. 하지만 요즘은 젊었을 때 드나들다 이제는 중장년이 된 청춘들이 추억을 음미하려고 찾는 경우가 많단다. 옛 간판만 걸린 채 문이 닫혀 있는 곳이 몇 곳 있고, 가장 인지도가 있는 행복식당을 비롯해 꿀복식당, 동창, 장날 등 주점 몇 곳이 매일 저녁마다 손님을 맞고 있다.
서성로 돼지골목 바로 옆에는 깡통골목의 뒤를 이은 함석골목이 형성돼 있다. 깡통골목은 6'25전쟁 때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깡통이며 드럼통 등으로 난로와 연통 같은 생활용품을 만들어 팔던 골목이었다. 산업화가 이뤄지며 이 골목의 주재료는 깡통에서 함석(아연도금철판)으로 자연스럽게 교체됐다. 함석으로 닥트(공기 환기 관로), 배관, 주방 후드 등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 '~닥트'라는 간판을 건 가게 몇 곳이 모여 있는데, 바로 깡통골목과 함석골목의 명맥을 잇고 있는 가게들이다. 가게 바로 앞에 함석을 펼쳐놓고 망치로 두드리며 수고롭게 수작업으로 제품을 만드는 장인들이 있다.
글 사진 황희진 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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