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기 때문에'. 요절한 어느 유명한 가수의 유작처럼 남아 있는 노래의 제목이다. 그렇다! 우리가 무언가를 아쉬워하고 추억하는 것은 그게 다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던가. 그리고 그 회한의 절정은 다른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가족과의 영원한 이별이 갖고 온 상실감이다. 어쩌면 그 가수의 요절이 그 노래에 대한 사랑의 원천일는지도 모르는 것처럼.
호국보훈의 달이다.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에게 싫든 좋든 돌아오지 않는 사랑과 관련된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보훈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으면 더더욱 그럴 것이고, 혹여 관련이 없다 하더라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이별과 상실에 대해 무언가 유쾌하지만은 않은 불편한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그것은 바로 국가와 사회에 대한 양식 있는 국민들의 부채 의식이리라.
일제의 식민압제를 광복으로 떨쳐내자마자 6'25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치렀고, 다시 내부의 갈등과 방향 상실로 민주화 열기에 휩싸였던 것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대한민국 역사의 질곡이다. 그런데 요즘 적잖은 시간이 흘렀다 하여 그 처절한 질곡의 역사에 대한 기억을 왜곡하거나 불필요한 것으로 인식하려는 일련의 사회 분위기가 형성돼 가는 듯하다. 그 대표적인 것이 보훈의 중요성에 대한 외면이고 다른 하나는 그와 동시에 일어나는 공동체 의식의 상실이다.
그런 우려스러운 국민 인식이 외부로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이 바로 우리나라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태극기에 대한 태도다. 인터넷은 고사하고 TV도 많지 않던 시절에 누가 그렇게 태극기 달자고 알리지도 못했을 텐데 국경일이나 국가 기념일에 우리는 동네마다 펄럭이는 태극기의 물결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들어서는 부쩍 각종 매체를 통해 태극기 게양을 호소해도 고층 아파트가 즐비한 요즘 오히려 국경일에 태극기 구경하기가 더 힘들어졌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일어났던 모든 발전과 진보의 이면에는 하나의 예외도 없이 반작용 또는 부작용의 그림자가 있었음은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반작용 또는 부작용이 무서워 더 중요하고 의미 있는 발걸음을 떼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큰 문제일 것이다. 결국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에 대해 반성하고 미래에는 그러한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일상을 꾸려나가는 것이, 온 인류의 공동 번영을 위한 개별 국가 국민들의 과제이자 숙명일 것이다. 그런 숙제를 가장 잘하고 있는 나라가 독일이고 가장 못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온 세계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를 애써 부인하며 그릇된 가공의 역사를 후손들에게 가르치려고 수작을 일삼는 일본이 몇십 년째 불황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꼭 우연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입장을 바꾸어 국수주의와 전체주의의 발호에 맞서 싸우다 일어난 희생과 헌신에 대한 감사와 기억 또한 국가 구성원으로서 갖추어야 할 공동체 의식이요 인류사적으로 보면 박애주의 정신이다. 6'25전쟁 당시 수많은 해외 참전용사들이 이름도 몰랐던 이 땅에 와서 흘린 피와 멈춰버린 그들의 숨결을 생각해보라. 얼마 전에도 낙동강 전선에서 실종된 미군 장교 제임스 엘리엇 중위와 그를 65년이나 기다리다 사망한 미망인이 치열한 전투로 유서 깊은 왜관 호국의 다리 밑에서 영혼으로 재회했다. 그것을 사랑이란 말 외에 어떤 것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러한 사랑을 국민들에게 널리 알리고 일깨우는 것, '보훈'은 그래서 국가 운영의 뼈와 살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랑과 보훈의 실천을 너무 어렵고 거창하게만 생각하는 것 같다. 우선 당장 오는 일요일에 앞산 충혼탑부터 올라보자. 혼자라도 좋다. 가족과 함께라면 더욱 좋다. 왜냐고? 사랑하기 때문에.
오진영/대구지방보훈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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