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A씨는 최근 모르고 지내던 담석증을 종합건강검진에서 발견했다. 그로부터 1주일 후, A씨는 복부 오른쪽의 통증이 심해 응급실을 찾았다. 그 전까지 한 번도 말썽을 부리지 않던 담석이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다시 초음파 검사를 해보니 담석은 그대로였지만 담낭 염증이 심해 다음날 담낭절제수술을 받았다. 담석증의 가장 주요한 원인은 담즙이 정체되기 때문이다. 담즙은 지방질을 소화할 때 필요한 소화액으로 식후에 담낭벽이 수축해 담즙을 짜면 십이지장 안으로 흘러가고 췌장액을 활성화시켜 지방질의 소화와 흡수를 돕는다.
그러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담즙을 짜는 부교감신경 기능과 담낭을 수축시키는 콜레시스토키닌이라는 호르몬 기능에 이상이 생겨 담즙이 정체되고 소화불량이 생긴다. 쉽게 말해 체한다는 뜻이다. 사실 A씨처럼 담석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야 소화가 잘 되지 않고,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응급실에 실려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자신의 담낭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에 골똘한 나머지, 스트레스를 받아 담즙이 정체를 일으키고 결석이 입구를 막아 심한 담낭염을 유발한 것이다.
전공의 시절, 예순이 넘은 신사분이 황달을 호소하며 입원했다. 검사 결과, 담관이 막힌 간문부 담관암으로 진단됐다. 당시에는 수술 방법이 확립돼 있지 않아 근치적 절제수술을 하지 못했다. 막힌 위쪽 담관에 관을 꽂아서 담즙을 밖으로 빼내고 황달과 담관염을 완화해줄 뿐이었다. 조직검사를 하지 않아 암으로 확진하진 않았다. 환자는 내게 매달려 병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얼마나 더 살 수 있는지 애원하듯이 물었다. 나는 아는 범위 내에서 설명을 했다. "담관이 막혀 있어 관을 통해 담즙을 빼내면 증상이 호전될 겁니다. 아직 암이라는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설명이 끝나자 환자는 갑자기 밝게 웃으며 내 손을 잡고서 되물었다. "암이 아닐 수도 있단 말이지요?" "네, 그렇습니다."
암이라고 생각하며 체념하고 있던 환자는 암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에 환하게 밝아졌다. 그날 이후 환자는 잃었던 식욕을 되찾았고 나날이 안색도 좋아졌다. 비관적인 뜻을 내비친 담당교수보다 오히려 햇병아리 의사가 들려준 "암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에 희망을 걸었다.
얼마 후 환자는 퇴원했다. 이후 열이 나거나 황달이 오면 응급실로 와서 전공의인 나를 찾았다. 나는 막힌 관을 세척하여 뚫어 드리고 항생제 처방도 했는데 환자는 큰 불편 없이 잘 지냈다. 군의관으로 입대하기 전까지 3년 넘게 그 환자를 돌봤다. 암으로 확진하지 않고 희망을 갖고 살도록 한 것이 암 확진 후 절망 가운데 사는 것보다 더 오래 살게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 당시에는 그게 옳았을지 모른다. 마음의 평안은 신체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불안감은 병을 조장할 수 있다. 근심이 병이 되고 믿음이 약일 경우가 많다.
강구정/계명대 동산병원 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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