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어느 때보다 성숙한 시민의식이 메르스 확산 막는다

청정지역 대구도 메르스 공포 현실화

공무원의 몰지각한 행태에 시민 분노

확진자와 접촉한 모든 명단 파악 중요

빛나는 대구정신으로 위기 극복해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청정지역이던 대구에 확진 환자가 발생해 시 전역에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메르스 공포가 우리 지역 우리 동네에서 현실화되면서 시민들의 불안감이 더욱 높아진 것이다. 시민들은 우선 메르스 청정지역 방어망을 무너트린 사람이 공무원이라는데 분노한다. 메르스 방역체계에 적극 부응해야 하는 것은 물론 예방에 앞장서야 할 공무원의 몰상식하고 몰염치한 행위로 빚어진 일이어서다.

'대구 첫 메르스 확진 환자 발생'이란 날벼락을 몰고 온 사람은 남구청 주민센터에 근무하는 50대 공무원이었다. 그는 지난달 27일쯤 어머니와 함께 메르스 2차 유행의 진원지인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을 방문했고,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하지만 대구로 돌아온 그는 별다른 증세가 없다는 이유로 출근해 평소대로 생활했다. 지난 13일에는 오한과 고열 등 메르스 의심 증상이 나타났지만, 지나쳤다. 다음날인 14일에는 집 인근 목욕탕을 출입하는 상식 밖의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결국 몸 상태가 이상했던 15일에야 연가를 내고 보건소를 방문해 검사를 받고는 대구의료원으로 격리 조치됐다.

이 과정에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한두 군데가 아니다. 삼성서울병원 슈퍼 확진자를 통한 전염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70대 후반인 그의 어머니와 누나까지 확진 판정을 받았는데도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다. 지난 9일 대구시가 정부의 감염병원 명단 발표 후 삼성서울병원 방문자 자진신고를 받았는데 이마저도 무시했다. 온 나라가 메르스 확산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데도, 자신의 감염 여부 점검과 주변 피해 방지를 위한 조치를 끝내 외면한 것이다.

이 파장은 엄청났다. 대구시 전체에 비상이 걸렸고, 온 시민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그가 일하던 주민센터는 폐쇄되고, 함께 근무했던 직원 10여 명은 모두 자가격리됐다. 일단 음성 판정이 났지만 아들의 재검사 결과에 따라 인근 학교까지 휴업령이 내릴지도 모를 상황이 됐다. 또한, 남구청 공무원인 부인을 비롯해 같이 살았던 장모와 처남 등 가족들에 대한 2차 검사가 남아 있어 자칫 그 여파는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로까지 퍼질 여지도 남아 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그의 업무가 사회복지와 관련된 것이어서 면역력이 약한 노인과 저소득층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는 점이다. 대량 감염의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직원들과 회식을 하며 술잔을 돌리고, 대중목욕탕에 다녀오는 등 여러 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접촉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남구 주민은 물론 대구시민 전체가 긴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 공무원의 잘못한 판단과 행동이 대구시민 전체를 위기로 몰아넣은 셈이다.

대구의 청정 방역체계가 이렇게 뚫린 것은 직접적으로는 한 공무원의 어처구니 없는 처신 때문이지만, 일차적으로는 정부 방역 당국의 무책임한 대응 탓이기도 하다. 삼성서울병원에서 메르스에 감염된 사람들이 전국 곳곳으로 확산되는 것을 조기에 차단하고, 응급실 환자의 보호자와 일반 방문자 명단을 제대로 파악했더라면 이런 일을 예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구에서 확진 환자 발생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사태는 벌어졌다. 이제 남은 것은 이를 얼마나 슬기롭게 극복하느냐는 것이다. 대구시는 16일 '메르스 확진 환자 발생에 따른 민관 합동 대책회의'를 열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엄청난 숫자의 접촉자들을 파악하고 격리자로 분류해야 할 시 보건당국의 부담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시민의 건강과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모든 행정 역량을 메르스 확산 방지에 쏟아야 한다. 특히 밀접 접촉자 파악에는 절대로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 환자 당사자는 물론 가족들의 시간'장소별 이동경로를 추적 조사하고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 범위도 파악해 공개해야 한다.

이번 사태에서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시민정신이다.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가는 전염병의 확산은 당국의 힘만으로 절대 막을 수 없다. 환자나 가족들과 직'간접적으로 접촉한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보건당국에 신고하고 검진을 받아 본인의 건강을 지키고 이웃에게 끼칠 피해를 막아야 한다. 본인과 사회 전체를 걱정하는 성숙하고 투철한 시민정신만이 가족과 이웃을 지킬 수 있다. 위기에서 더욱 빛났던 대구의 시민정신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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