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복70주년 특별기획-권영재의 내고향 대구] 24) 서거정

서거정 선생은 대구가 낳은 큰 인물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서울에서 살았지만, 고향 대구를 잊지 못해 '대구십영'(大丘十泳)이라는 제목으로 1530년(중종 25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칠언절구 시를 남겼다. 다른 말로는 '달성십영' 혹은 '달성십경'이라고도 한다. 워낙 오래전 대구의 풍경이라 장소가 확실치 않고 느낌도 당시와는 다르지만 선생의 수려한 문장을 다시 한 번 음미해 보자.

1. 금호강에 배 띄우기(琴湖泛舟·금호범주)

금호의 맑고 얕은 곳에 놀잇배를 띄우니/차츰 한가히 가서 흰 갈매기에 가깝구나/한껏 취해 달 밝은데 노 저어 되돌아가니/풍류란 반드시 중국의 5호에서 노는 것만 아닐세.

2. 입 암에서 고기 낚기(入巖釣漁·입암조어)

가랑비 조록조록 가을 물가 내리는데/낚싯줄 드리우고 홀로 앉아 하염없이 생각하네/자고 가는 낚싯밥 아래 다소 있음을 알겠는데/황금 자라를 낚지 못해 멈추지 않네.

3. 거북바위의 봄 구름(龜岫春雲·귀수춘운)

거북봉우리가 흐릿하여 큰 자라 봉우리 같구나/구름이 무심히 나온다지만 또한 뜻이 있더라/대지의 생물들이 바야흐로 바라고 있는데/뜻 없이 단비를 만든다 하랴.

4. 금학루의 밝은 달(鶴樓明月·금학명월)

한 해 열두 번 둥근 달 중에/추석에 한껏 둥근 달을 기다려 얻네/또한 긴 바람이 구름 쓸어 가버리니/온 다락에 조그만 요기도 붙일 곳 없네.

5. 남쪽 연못의 연꽃(南沼荷花·남소하화)

돋아난 어린 연꽃은 작은 돈을 겹쳐놓은 듯한데/꽃이 피면 끝내는 배보다 크네/재질이 커서 쓰이기 어렵다 말하지 말라 /고질병을 보내어 만백성을 고치기에 알맞으니.

6. 북쪽 벼랑의 향나무 숲(北壁香林·북벽향림)

옛 벼랑의 푸른 향나무는 옥으로 만든 창같이 길고/긴 바람이 끊임없어 언제나 향기롭구나/은근히 또다시 가꾸어 힘을 붙이면/어울려 맑은 향이 온 고장이 함께 할 수 있으리.

7. 동화사 찾는 스님 (桐寺尋僧·동사심승)

멀리 절에 올라가는 돌층계 길엔/푸른 등나무에 흰 버선, 또한 검은 지팡이로다/이렇게 흥겨운데 알아주는 이 없네/하기야 흥이 청산에 있지 스님에게 있진 않거니.

8. 노원에서 손님 보내기(櫓院送客·노원송객)

관도에 해마다 버들 빛이 푸르고/짧은 거리에 있는 주막이 수없이 긴 거리의 주막을 이었네/이별 곡 다 부르고 서로 흩어지니/모래밭 가에 두 개의 흰 술병만 누웠구나.

9. 팔공산에 쌓인 눈 (公嶺積雪·공령적설)

공산 천 길에 울퉁불퉁 산이 겹쳐 의지했는데/쌓인 눈이 하늘을 적시어 이슬이 맑구나/사에 신령이 응당 있음을 알겠고 /해마다 삼백이 내려 풍년을 기약하네.

10. 침산의 저녁노을(砧山晩照·침산만조)

물은 서쪽에서 산 밑으로 흐르고/침산은 푸르러 맑은 가을에 붙었구나 /저녁바람에 어디에서 방앗소리가 급한고/사양에 일임하여 나그네의 수심을 찧네.

 

'금호강에 배 띄우기'는 당시 금호강에는 동촌 아양루, 검단 압모정, 강창 하식애 그리고 화원 상화대가 있었다. 강에서 배를 타기도 하지만 정자에서 자연경관을 감상하고 음풍농월(吟風弄月)도 하는 것이다. 배를 타고 강에서 갈매기를 본다고 하는데 어떤 이는 강에서 볼 수 있는 새는 백로나 두루미였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금호강에 가보지 않는 사람의 말이다. 금호강에도 갈매기가 온다. 바다 갈매기는 부리가 노랗고 위의 것이 아래로 굽어 있다. 그러나 금호강 갈매기는 부리가 붉고 직선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철새이다. 예리한 관찰력을 갖고 직접 강 위에서 배를 타고 갈매기를 묘사한 선생의 시를 함부로 문학적 과장으로 치부하는 것은 큰 실례가 된다.

'입암에서 물고기 낚기'에서 입암을 건들바위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대구읍지나 세종실록지리지에 보면 입암이 신천에 있다고 적혀 있다. 이 바위는 유성이 떨어져 만들어졌으며 꼭대기 부분이 삿갓을 씌운 것처럼 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당시에는 건들바위 아래도 물이 흘렀으니 낚시도 했겠지만, 주위 풍광이 선생이 사랑할 만한 곳도 아니었고 바위 재질과 모양도 전혀 다른 것으로 봐서 오늘날 건들바위가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거북바위는 아직도 제일중학교에 그대로 있다. 대구 읍성이 만들어질 때 시내 한가운데 있는 자그마한 언덕인 연귀산(連龜山)에 돌 거북을 묻었다고 한다. 대구는 북쪽에 팔공산이 있고 남쪽에 비슬산이 있는데 왜 하필 자그마한 연귀산을 진산(鎭山)이라고 하여 돌 거북을 묻었을까? 풍수지리학적으로 보면 대구는 불기운이 충만해 이 기운을 소통시켜주어야 대구에 큰 인물이 나고 재앙도 줄어든다고 보았다. 그 비보(裨補)를 하고자 시내 가운데 연귀산을 진산으로 삼고 돌 거북을 묻었다는 것이다. 이런 깊은 사연이 있는 산이기에 선생은 그 산 위에 떠 있는 구름이 상서롭게 보였을 것이다.

거문고와 학이 놀던 정자 금학루, 이곳은 중구 대안동 50번지이다. 한국전쟁 때는 피란민 수용소였다가 현재는 제일성결교회, 대한천리교 그리고 대안성당이 있다. 거문고와 학이 놀던 상서로운 곳이니 여러 종교의 성지가 되었나 보다.

남쪽 연못의 연꽃은 학설이 구구하다. 성당못이다. 서문시장이다, 아니다 영선못이다 등. 옛날 천황당 못이 현재 서문시장이 되었는데 위치적으로 볼 때 천황당 못이 남쪽 못이 되어야 이치에 맞는 설명이 된다. 이 시는 북쪽 벼랑의 향나무에 대응하는 시 구절로 해석해야 저자의 숨은 의도를 알 수 있다. 나머지 향나무 숲, 동화사, 노원동, 팔공산 그리고 침산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서거정 선생은 세종 때(1420년) 태어나 육조판서를 두루 거치며 여섯 왕을 섬긴 조선의 정치인이며 학자이고 시인이었다. 1488년 돌아가실 때까지 많은 저서를 남기고 매화, 대나무, 연꽃, 해당화를 즐겼으므로 호도 이 네 가지 아름다운 것을 즐긴다는 의미에서 사가정(四佳亭)으로 지었다. 서울 중랑구에 사가정 공원과 사가정 역이 있다. 강남에는 사가로가 있다. 그러나 막상 고향 대구에는 그를 기리는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다. 하긴 고향에서 존경받는 성인이 과연 몇이나 있던가! 예수나 석가 역시 이스라엘과 인도에서 그러하지 않던가?

권영재/미주정신병원 진료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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