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째시한구절떠오르지않는다
천덕꾸러기사는일에허우적거린다
터덜터덜구름이내마음끌고가고
프르른시간에등떠밀려온저문귤동마을
태산목그늘아래서마흔중얼거린다
다산(茶山)은불혹에얼음낀강진에위리안
치되어
가슴에고인피찍어수백권서책엮었다
눈속에빳빳이고개쳐든춘란이
그리움은상처가운데뿌리내려야한다고
나직히일러준다눈발치는세상한귀퉁이
마흔으로넘어가는노젓는소리에
붉게붉게노을속탄다
(전문.『풀밭의 담론』. 만인사. 2001)
이 시가 만들어진 시기와 비슷하게 발표된 양희은의 노래 「내 나이 마흔 살에는」이라는 노래는 '이 힘겨운 하루하루를 어떻게 이겨낼까 무서워' 빨리 서른이 되고 싶었던 누군가가 마흔이 되면서 부르는 노래다. "다시 서른이 된다면 정말 날개 달고 날고 싶어. 그 빛나는 젊음은 다시 올 수가 없다는 것 이제야 알겠네. 우린 언제나 모든 걸 떠난 뒤에야 아는 걸까. 세월의 강 위로 띄워 보낸 내 슬픈 사랑의 내 작은 종이배 하나…." 그러나 우리는 나이가 들면서 안다. 서른이 되어도, 마흔이 되어도, 쉰이 되어도, 예순이 되어도… 그 회한과 바람은 똑같이 반복된다는 것.
오늘 문득 낙동강 위를 지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지나간 세월을 그리워하거나 후회하고, 다가올 미래를 초조하거나 막막하게 바라보는 것은 우리의 삶을 '시간'의 활차 위에만 올려놓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이 시에서처럼 그리움이 뿌리내리는 곳은 상처라는 '장소'다. 우리는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장소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어서, 다산이 사유와 집필에 전념할 수 있었던 것도 유배라는 하염없는 시간이 아니라 귤동 마을이라는 장소에 자신을 맡겨두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자신과 이웃을 돌아보는 사유는 시간의 좌표가 아니라 공간의 좌표 위에 있다. 시간의 좌표는 한 차원 더 높은 곳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의 미래가 어떠할지 알 수 없다. 근거 없는 낙관이나 비관, 종말론적 사고는 우리의 몫이 아니다. 138억 년 우주의 역사에 있어서 지금 나의 시간은 오직 지금 여기의 공간과 장소 속에서만 사유될 수 있을 뿐이다. 내가 서있는 이 자리, 내 옆의 누군가가 나의 시작이자 끝인 것. 이제 서른, 마흔, 쉰, 예순, 일흔이 된 나 자신에게 하여 오늘은, 세상 한 귀퉁이에서 바라보는 아침노을을 보낸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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