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진중권의 새論 새評] 삼성이라는 '열외'

1963년 서울생. 서울대 미학과.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철학과 박사 수료. 중앙대 겸임교수. 카이스트 겸직교수
1963년 서울생. 서울대 미학과.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철학과 박사 수료. 중앙대 겸임교수. 카이스트 겸직교수

"박원순 시장, 스트레스 줘 면역 약해"

'삼성맨' 인상 더 강한 '메르스 의사'

방역망 뚫리자 삼성병원 사기업 돌변

삼성그룹 치외법권 속 공적 책임은 '0'

'메르스 의사' 35번 환자의 용태가 위독해지자, 어느 매체에서 "박원순 시장이 스트레스를 주는 바람에 면역력이 약해졌다"고 보도했다. 웃지 못할 '자폭 개그'다. 젊은 의사를 중태에 빠뜨린 것은 '사이토카인 폭풍'. 이는 "과도하게 면역력이 증가해 대규모 염증 반응이 나오는 증상"이라고 한다. 한마디로 그 의사는 면역력이 약해서가 아니라 너무 강해서 탈이 난 것이다.

따라서 그 보도가 옳다면, 박 시장이 그에게 스트레스를 주어 그의 면역력을 떨어뜨림으로써 결과적으로 그의 회생을 도운 셈이 된다.

35번 의사는 그동안 여러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박원순 시장을 원색적으로 비난해 왔다.

"계략 잘 세우고 사람 괴롭히는 거 특기인 사람" (TV조선), "하늘에서 천벌이 왜 안 내리나 궁금해하고 있어요." (채널A). 이해할 수 있다. 당시 그는 격리 대상자가 아니었고, 증상 발현 후에는 즉시 자가 격리를 했기에, 그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쾌감이 너무 컸나? 그는 박 시장의 행동에도 공익적 의도가 있었을 가능성을 부정한다. 그의 인터뷰가 듣기 거북한 것은 그 때문이다.

사실, 일이 제대로 돌아갔다면 5월 27일 14번 환자와 접촉한 순간 그는 이미 격리돼야 했다. 게다가 그는 당시 알레르기 비염 때문에 기침과 미열 증세를 보였고, 그런 상태에서 병원 밖으로 나가 많은 사람을 접촉했다.

그는 박 시장의 브리핑으로 자신의 '명예'가 훼손당했다고 느낄지 모르나, 시민들은 그의 외출로 '생명'이 위협당했다고 느꼈다. 물론 본의는 아니었지만, 의사라면 '명예'를 챙기기 전에 먼저 이 부분에 '유감'부터 표명했어야 하지 않을까?

그가 '명예'가 훼손됐다고 느끼는 것도 좀 이상하다. 왜? 그는 아직도 익명으로 수천 명에 달한다는 삼성병원 의료진 틈에 끼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정말 '개념 없는 의사'가 된 데에 수치심을 느꼈다면, 방송으로 제 목소리를 스스로 드러냈겠는가? 그가 지키려 한 명예가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아니라 '직장'의 것이었을 게다.

메르스로 심한 기침을 해가면서까지 이 매체, 저 매체에서 인터뷰를 하는 그에게서는 시민의 생명을 지키는 '의사'의 인상보다는 자신의 회사를 지키는 '삼성맨'의 인상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문제의 본질은 이것이다. 삼성그룹이 국가 속에서 치외법권 지대로 남아 있듯이, 삼성서울병원 역시 그동안 국가 방역 체계 속의 '열외'로 남아 있었다. 최고의 실력을 가진 삼성이기에 열외시켜 줄만도 하다.

실제로 삼성병원은 1번 메르스 환자에 대해서는 완벽에 가까운 조치를 취했다. 과연 국가가 신뢰할 만하다. 문제는 방역망이 뚫렸을 때다. 그때 삼성병원은 공익이 아니라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으로서 행동할 유혹을 받게 된다.

적어도 박원순 시장은 그 '열외' 지대에 뭔가 심각한 문제가 생겼음을 직감했다. 그래서 다소 부족한 정보로 긴급 브리핑을 하여 이를 사회에 널리 알리고. 이 열외 지대에 대한 공적 통제를 시도했다.

"계략 잘 세우고 사람 괴롭히는 거 특기인 사람"이라는 원색적 언어는 박 시장의 이 '공적' 개입 시도에 대한 사기업의 공격적 응전으로 봐야 할 것이다.

방역에 실패했다는 사실이 밖으로 새나갈 경우, 병원은 물론 엄청난 손실을 입게 될 테니까.

세부에 다소 부정확함이 있었지만, 박 시장의 지적은 대체로 옳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가 뚫렸다"고 둘러대던 삼성서울병원도 결국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이번 사태의 가장 불행한 역설은, 인터뷰를 통해 "건강한 사람에게 메르스는 위험하지 않다"고 강조했던 그 사람이 뚜렷한 이유 없이 불안정한 상태에 빠졌다는 것. 그가 속히 쾌차하여 이 역설을 부디 해피엔딩으로 매듭짓기를.

동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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