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터뷰 通] '대구요가의 산증인' 대구요가협회장 이대희 씨

"요가는 정신과 내면의 성숙 중시하는 운동…'걸림 없는 자유' 추구해요"

이대희 대구요가협회장과 수련생들이 요가 자세 시범을 보이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이대희 대구요가협회장과 수련생들이 요가 자세 시범을 보이고 있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요가를 '0.3평의 기적'이라고 부른다. 가로 175㎝, 세로 61㎝ 매트 위에서 펼쳐지는 많은 동작은 수천 년 동안 인류의 건강을 지켜주고 더 나은 영적(靈的) 세계로 인도했다.

몸 누일 공간만 있으면 일반인은 물론 임산부, 수험생, 환자들까지 쉽게 운동에 몰입할 수 있어 대중 운동으로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한국에 요가가 처음 전래된 건 고구려 소수림왕 때. 당시 불경에 요가 수행법 기록이 들어 있는 것으로 봐 불교가 들어올 때 같이 전래된 것으로 보인다.

요가의 역사를 말할 때 대구도 빼놓을 수 없는 성지 중 하나다. 달성 유가사의 '유가'(瑜伽)가 바로 요가의 한문 표기이기 때문이다. 827년 신라 흥덕왕대에 건립된 유가사는 지역의 명상, 참선, 요가의 도량으로 주춧돌을 세웠던 것이다. 그 전통을 이어받아 대구에서 수십 년째 요가 보급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고교 시절 요가에 입문해 생의 대부분을 수행에 쏟아부은 흔치 않은 이력이다. 불모지나 다름없던 대구에서 40년째 요가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이대희(60) 대구요가협회장을 만나봤다.

◆학창 시절부터 신비주의'밀교에 심취=일찍부터 신비, 초월주의에 몰입했던 이 회장. 중학교 때부터 그의 책상엔 최면술, 밀교(密敎), 주술(呪術) 같은 서적이 여러 권 꽂혀 있었다.

도(道)에 대한 호기심에 젊은 시절 그의 모든 행적은 끝없는 회의와 탐구로 연결되었다. 지금은 이단(異端), 사교로 불리는 모든 종파에도 스스로 입도해 교리를 파헤치고 연구할 정도였다.

"추운 겨울 강화도 마니산에서 움막을 짓고 주문을 외우며 수행한 적이 있어요. 한 손에 부적을 들고 한 손에 화인(火印)까지 남기며 초능력을 연마했지만 끝내 기적은 없었어요. 어느 핸가 여름에는 수행 중 뇌수막염에 걸려 응급실에서 겨우 눈을 떴던 적도 있습니다. 1980년대는 해외로 다니며 깨달음에 다가가려 노력했죠. 요가를 통해 득도에 이를 수 있다는 일본 오키요가수도장에서 연수했고 인도에서는 살아있는 성자라는 오쇼라즈니쉬 명상센터에서 몇 달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이 회장은 이 시기 방황과 시행착오를 통해 신비주의 수행의 허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신이(神異) 같은 잡념을 버리고서야 비로소 전통 요가의 수행법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가 미몽에서 벗어나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대구엔 몇몇 고수들이 요가를 지도하고 있었다.

◆1990년대 들어와 대중운동으로 확산=1970년대 대구에 요가가 뿌리 내린 데는 이보인, 백남례, 변동훈 스님 같은 분들의 공로가 절대적이었다. 요가시장이 크지 않았던 시대에 그분들은 헌신적으로 초창기 대구요가를 이끌었다.

이 회장은 이보인 씨를 스승으로 모시고 1972년부터 옛날 동아백화점 앞에서 수련을 시작했다. 고교 시절부터 오랫동안 두 사람은 사제관계를 이어갔다.

1981년에 독립한 이 회장은 대구백화점 앞에 센터를 열고 본격적으로 요가 지도에 나섰다.

"지금은 요가 인구의 80~90%가 여성이지만 1970, 80년대엔 그 반대였어요. 여자 회원은 1년에 1, 2명 받을까 말까였죠. 당시 요가가 고급 운동으로 인식돼서 유명한 강사들은 재벌회장들에게 불려다니기 바빴어요. 지역에서도 의사, 법조인, 교수 같은 지도층 인사들이 주 고객이었어요."

차츰 지역에서 조금씩 뿌리를 내려가던 요가는 1980년대에 들어와 된서리를 맞게 된다. 이유는 단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1985년 김정빈 씨의 소설 '단'(丹)이 나오면서 난리가 났어요. 참선, 수행 시장은 뻔한데 고객의 절반 이상이 그쪽으로 몰려간 거죠. 시장이 양분되면서 우리도 대안을 찾아야 했어요."

급속히 위축되었던 요가 시장은 1990년대 들어와 본격 대중운동으로 도약 기회를 맞았다. 웰빙, 다이어트 바람을 타고 운동, 수련의 트렌드가 완전히 바뀌었던 것이다. TV에선 연일 날씬한 강사들이 나와 자세를 뽐냈다. 그들의 포즈에 취한 젊은 여성들이 대거 요가센터로 몰려들었다. 이때부터 성별의 판도도 완전히 바뀌었다. 고객의 90%가 여성이었고 아예 남성회원을 받지 않는 곳도 생겨났다.

요가가 여성들의 다이어트, 미용 쪽으로 특화되면서 운동법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1980년대가 호흡, 명상 위주 인도 전통식 수련법이 주류를 이룬 시기였다면 1990년대부터는 동적(動的)인 운동, 스트레칭 요가가 대세를 이어갔다. 요가가 현대식으로 응용되면서 한국인 체형과 시대 요구에 맞게 변화해갔던 것이다.

"인도 전통요가가 척추 중심 몸통요가라면 현대요가는 사지(四肢) 위주 근력운동의 성격이지요. 요즘은 여기에 밧줄, 봉, 대나무 같은 도구들이 응용되면서 유연성, 체형 위주 운동으로 변화하고 있어요." 이 회장은 이런 경향 탓에 요가센터 강사가 대부분 여성으로 바뀌고 남성들의 수련이 불편해졌다고 말한다.

◆현대인 건강'미용 욕구 적절한 처방=현대인들에게 요가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여성, 직장인들의 니즈(needs)가 운동에 잘 반영되기 때문이다. 즉 직장인들은 근무 환경, 사무 기기 작동 과정에서 심리, 육체적 건강상 문제점에 노출되는데 요가는 적절한 해법과 처방을 내려주었던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신체의 틀어짐, 발달 왜곡 같은 것들입니다. 한 자세로 10년 이상 생활하다 보면 척추측만, 손목디스크, 골반 틀어짐이 심해지는데 이런 증세는 서너 달만 수련해도 금방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요가는 몸 전체의 긴장을 풀어주고 신체의 전'후'좌'우'상'하 6방(方)을 골고루 사용하기 때문에 신체 각 부분의 활력을 키워줍니다."

두 번째 요가의 장점은 수련을 통해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현대인들은 늘 사회적 긴장관계 속에 노출되어 있다. 일상에 쫓기는 현대인들이 호흡, 명상을 통해 정신적 치유와 영적 안정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은 요가만의 매력이다.

요가는 기본적으로 다이어트, 미용에 효과적이지만 여성들의 정신, 내면치료에도 더없이 좋은 운동이다. 가사, 직장업무에 쫓기는 여성들은 심한 스트레스에 노출돼 있고 이들 중 상당수가 우울증이나 불면증 같은 증세로 발전하게 된다. 화병, 우울증 노출군(群)의 20%가 난임증 환자라는 통계도 있다. 요가가 의사 처방전처럼 직접적인 치료로 연결되지는 않지만 꾸준한 수련을 통해 여성들의 마음 건강을 지켜줄 수 있다는 것이다.

40여 년 동안 대구에서 요가 대중화에 앞장선 이 회장의 요가 철학은 간결하다. 수련생들에게 정신 가치, 내면 성숙을 제일 먼저 가르친다. 운동 전 10분 동안 정신강좌도 빼놓지 않는다.

"요가는 칭찬과 비난을, 성공과 실패를, 삶과 죽음을 하나로 봅니다. 자유란 어느 상황에도 '걸림'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보통사람들에게는 너무 추상적이고 감조차 잡히지 않는 경지일 뿐이다. 그러나 일반인들도 꾸준히 수련하다 보면 건강을 되찾게 되고, 열심히 호흡하다 보면 마음에 평화가 깃들고, 끊임없이 명상에 들다 보면 어느샌가 초월의 단계에 이르게 될 것이다.

한상갑 기자 arira6@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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