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청라언덕] 관료 단체장, 정치인 단체장

지난해 이맘때 치러졌던 지방선거에서 권영진 대구시장이 당선됐을 당시 많은 사람들은 '변화'와 '혁신'에 목말랐던 대구시민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권 시장 당선 직후, 언론들도 대부분 변화와 혁신으로 활기찬 대구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머리기사로 표현했다.

그만큼 대구는 '제3의 도시'라는 영광을 뒤로한 채 활력을 잃은 도시로 추락하고 있었다. 또 대구가 이렇게 된 데는 지난 1995년 민선 출범 이후 줄곧 관료 출신이 시장직을 독점하면서 공직 사회가 나태, 안일함에 빠진 이유가 첫 번째라는 평이 많았다. 그래서 서울에서 정치인 생활을 오래 했던 권영진 시장에게 거는 기대는 컸다.

하지만 최근 우리나라를 한 달 동안 초토화시키고 있는 메르스 사태에 있어서만큼은 그 평가를 달리하고 싶다. 대구시의 초동 대처가 낙제점에 가까웠던 탓이다.

지난 15일 대구에서도 첫 메르스 확진 환자가 나왔다. 지난달 메르스 진원지인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을 가족과 함께 방문했던 남구청 공무원 K씨가 이날 오전 몸 상태가 좋지 않자 보건소를 찾으면서 알려진 것. 일반 시민도 아닌 공무원의 상식 이하의 판단과 행동이 시민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것보다 더 황당한 것은 이후 대구시의 대처였다. K씨는 15일 오후 3시쯤 메르스 1차 양성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도 정작 시에서는 감감무소식이었다.

각종 SNS 등을 통해 '대구도 메르스에 뚫렸다'는 소식들이 삽시간에 퍼지기 시작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담당 공무원들에게 전화를 돌렸지만 응답이 없었다. 겨우 통화에 성공한 한 공무원은 "1차 검사에서 양성 판정이 나왔다고 하더라. 이후 상황은 잘 모른다"고만 되풀이했다. 시의 모든 상황을 누구보다 빨리 알아야 하는 위치에 있는 이 공무원의 입에서 나온 '남의 일인 양하는' 말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시는 이날 밤 9시가 넘어서야 대책회의에 따른 언론 브리핑을 했다. 또 많은 시민들이 궁금해했던 K씨의 행적과 이에 따른 격리 대상자는 이틀이 지난 17일 오후에야 처음으로 발표했다.

시곗바늘을 조금만 앞으로 당겨보자. 지난 12일 오전 경상북도는 한바탕 난리가 났다. 1차에서 음성 판정을 받았던 메르스 의심 환자 Y씨가 이날 2차 검사에서 양성 판정으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청정 지역'을 자신했던 경북도로서는 큰 상처가 됐다.

기자의 전화는 이날 오전 내내 불이 났다. 대책회의가 소집됐고, Y씨의 그간 행적을 파악해 보내겠다는 내용이었다. 또 유관 기관과 어떻게 역할을 분담했고, 더 이상 메르스가 확산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 모든 정보를 공유할 테니 도민들을 안심시켜 달라고 했다.

이에 경북도는 Y씨가 돌아다녔던 경주'포항의 동네 병원과 약국, 학교 등을 재빨리 파악하고 언론 등에 협조를 구했다. 또 Y씨가 거쳤던 병원'약국의 휴진은 물론 학교 휴교'어린이집 휴원 등을 자체 결정하고, Y씨와 직'간접 접촉했던 사람들에 대한 격리'감시 조치를 이어 나갔다. 발 빠른 대응에 힘입었을까, 이후 Y씨가 22일 완치로 퇴원할 때까지 메르스 환자는 더는 경북에서 발생하지 않았다.

메르스 대응 초기, 정부의 비공개 원칙에 많은 국민들이 공분했다. 대신 박원순 서울시장의 '늑장 대응보다 과잉 대응이 낫다'는 말에 국민들은 안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구시와 경북도의 메르스 환자 발생 초동 대처는 분명 대비되는 부분이다.

통상적으로 관료 출신보다 정치인 단체장이 좀 더 유연하고 의사 결정이 빠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큰 사건이 터졌을 때는 안정되고 일사불란한 시스템이 우선한다는 점을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보여줬다. 관료 출신보다 정치인 출신이 무조건 나을 것이라는 예단은 피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대구시의 이후 대처는 유연하고 매끄럽게 진행됐다는 평이다. 더 이상의 환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번 경험이 권영진 대구시장의 장점을 더욱 부각시키는 좋은 약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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