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전 1985년 대구 서구 평리동 어디쯤/ 갓 태어난 통꽃 하나/ 맑은 잎 사이로 세상을 향해 긴 꽃술을 내밀었지
절망과 고통, 고독과 비애를 내 숙명처럼 부둥켜안고 /용서와 감사와 희망으로 바꿔 보낸 날들/ 일천구백오십일의 파리한 날들이여/ 이십육만 이천팔백의 눈물겨운 시간들이여
슬픔의 아름다운 독성이 온몸에 퍼져/ 사랑으로 목메었던 통꽃의 나날들/ 꽃술은 그래서 그토록 아파했던가?/ 꽃잎은 금빛으로 은빛으로/ 몸 바꾸며 울었든가?
애잔한 향기에 어린잎 시들지 않고/ 무성한 여름 볕에 익혀내는/ 단련된 파란 열매 이백여 개/ 귀하디 귀한 금은으로 꽃핀/ 생명의 전화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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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생명의 전화 30주년을 맞아 전시했던 시(詩)다. 1년 365일 하루 24시간을 한 시간도 쉬지 않고 외롭고 가슴 아픈 이들의 고민과 걱정근심을 들어주며 해결책을 머리 맞대고 찾아보는 곳, 계속 공부하지 않으면 덜컹 겁이 나는 곳, 생명의 전화 상담실이다. 어느 지역 어느 환경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올지 모르기 때문에 들어가면 늘 긴장되는 곳이다. 앉자마자 내 마음과 입술을 지켜달라고 먼저 기도했다. 이곳에서 나는 많은 것을 배웠다. 늘 세상의 백과사전을 펼치는 순간이었다. 나눔과 기부와 봉사를 배웠고 그것이 사랑이란 것도 배웠다. 내담자와 논의된 일들을 화두로 삼고 생각했다. 그러는 동안 마음속에 뿌리내린, 이해하고 공감하고 경청하는 나무를 잘 가꾸려 노력했다. 시작은 보잘것없었지만 30장의 근면상은 내 보물로 지정할 것이다. 상담 약속을 한 번도 어기지 않고 마친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가진다. 그동안 아프지 않아 감사하고 가족들의 이해가 있어 큰 도움이 되었다.
그동안 수많은 전화를 주고받았다. 성심성의껏 받는다고 받았는데 만약 나의 말에 상처를 받았다면 머리 숙여 용서를 빌고 싶다. 30년 전 상담사로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초기에 남편의 불륜과 늦은 귀가에 대한 고민으로 전화한 내담자와 무려 4시간 동안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규칙을 어긴 것은 물론이다. 지금 나와 같은 나이 또래였다. 지금은 편안한 삶을 살고 있으리라 믿고 싶다.
잘못 끼운 열쇠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마음 태우시던 분, 십자로 같은 삶의 길에 동서남북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하시던 분, 모두가 지금 잘 살고 있고, 당시 상담받은 것을 추억으로 간직했으면 좋겠다. 본의 아니게 잘못된 길을 가시는 분들은 얼른 제자리 찾으시고 내 가정 내 자식보다 소중한 것이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아시길 바란다.
그동안 내 안방처럼 드나들었던 생명의 전화가 그리울 것이다. 너무 많은 추억이 있고, 내 삶에 보석 같은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젊고 똑똑하고 당당한 후배들을 지지하며 어디서나 응원할 것이다. 하루속히 생명의 전화가 없어지는 것이 모든 사람의 바람이긴 하지만, 또 살아가는 데 고민 없고 걱정근심 없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나를 거쳐 간 모든 내담자들의 건강과 안녕을 빌고 또 빈다.
유 가 형/시인·대구생명의전화 지도상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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