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우리 문화계에서 가장 큰 이야깃거리는 신경숙 작가의 표절 문제였다. 이름만으로도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였기 때문에 그의 문학을 사랑하는 팬들이 받은 충격은 컸다. 전후 상황을 보면 글 전체의 흐름에서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단락이 일본 작가의 소설과 일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경숙 작가가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표현들을 기억해 두었던 것을 특정 상황을 표현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논문 표절 기준처럼 출처만 밝혔으면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이것이 표절인가에 대한 논쟁은 20여 년 전에 이인화 씨가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라는 작품으로 세계문학상을 받았을 때 매우 흥미롭게 진행되었었다. 이인화 씨는 그때 '혼성 모방'이라는 개념을 들어 자기 방어를 했었다. 혼성 모방이라는 것은 여기저기서 따온 문장들을 짜깁기하여 한 편의 글을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원작의 존재를 알 수 있게 하면서 원작이 가진 근엄함을 비트는 패러디와는 달리 원작의 존재를 알리지 않는 방법이다.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방법은 하나의 창작법이 될 수 있다는 논리였지만 표절을 합리화한다는 엄청난 비난을 받았었다.
이때는 문학에 대한 관심이 많았던 시기이다 보니 불필요한 표절 논란도 많았다. 어느 문장이 표절이다, 소재가 비슷하다, 심지어 무라카미 하루키와 문체가 비슷하다는 문제 제기도 있었다. 표절 문제는 논란이 된다는 자체만으로도 작가에게는 큰 타격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건전한 토론보다는 감정싸움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표절에 대한 논란이 그런 성격을 가지고 있다 보니 자연히 평론가들은 학연을 가지고 있거나 이런저런 모임에서 얼굴을 익히고, 술자리를 같이하는 그룹의 사람들에게는 관대하고, 자기 그룹이 아닌 사람들에게는 작은 꼬투리를 잡아서 가혹하게 평을 했다. 비평계의 그런 소모적인 논란은 영상에 밀려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던 한국 문학의 몰락을 가속화했다. 그래서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집이 발간되자마자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던 시절은 이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과 맞먹는 이야기가 되었다.
문학이 몰락하는 시대에 자기들끼리 그렇게 싸워봤자 이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평론가들은 꼬투리 잡기식 표절 논란은 자제를 해 왔었다. 그런데 신경숙 작가의 문제가 대중적으로 큰 문제가 되자, 비평의 무기력을 극복해야 한다는 말과 서울대 중심의 문학 권력이 문제라는 이야기를 한다.(신경숙 작가나 남편인 남진우 교수가 서울대 출신도 아닌데, 왜 거기에 서울대를 갖다 붙이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말들을 들으면 지금까지는 힘 있는 서울대 출신들에게 눌려 왔었는데, 이제는 그런 것 생각 않고 작가들을 더 혹독하게 (속된 말로) 까겠다는 선언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작품에 대한 호불호는 주관적이기 때문에 평론가들이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작품에 혹평을 하는 것은 작가들과 문학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내가 정기구독하고 있는 잡지 '시사 인'에는 격주로 영화 평론가인 김세윤 씨의 칼럼이 나온다. 영화를 새로운 시각으로, 재미있게 보는 방법을 알려주는 그 칼럼을 읽고 있으면 안 본 영화는 정말로 재미있을 것 같고, 꼭 한 번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보고 실망했었던 영화도 그 칼럼을 읽고 나면 새로운 재미가 생긴다. 어떤 때는 영화보다 영화 평론이 더 재미있을 때도 있다. 우리 문학 평론가들도 심판자의 역할을 하려고 하기보다는 김세윤 씨의 영화 평론처럼 대중들이 보다 친근하게 우리 문학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안내자 역할을 하는 것에 대해 좀 더 고민했으면 한다.
능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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