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대 세우지 못하는 시업(詩業)이 탕진해 보내는
눅눅한 내 무정란의 시간들
서른 해 더
詩 속에 구겨 넣었던 나의 논리는 무엇이었나?
(…)절정을 모르는 꽃 시듦도 없지.
(…)내가 나의 꽃 아직도 기다리듯
너는 네 허공을 지고 거기까지 가야 한다
우리의 불행은 피기도 전에 시드는 꽃나무들
너무 많이 알고 있는 탓 아닐까?
추위도 더위도 모르는 채 어느새 갈잎 드는
활짝 핀 꽃이여, 등 뒤에서 나를 떠밀어다오
꽃대의 수직 절벽에서
낙화의 시름 속으로!
(부분. 『파문』. 문학과 지성사. 2005)
'꽃 피는 시절'은 우리에게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표현한다. 시인의 표현처럼 '신고'(辛苦)를 견딘 '한지(寒地)의 꽃'이 그러한 아름다운 시절의 꽃이다. 이 시를 처음 읽으면서 '좋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몇 번을 읽으면서 이 시는 나를 불편하게 했다. 이 불편함으로 시를 소개하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아 다른 시를 고르려다, 나는 나의 이 불편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싶어졌다.
'절정을 모르는 꽃'에 시듦도 없다는 말이 무엇인가? '피기도 전에 시드는' '추위도 더위도 모르는 채 어느새 갈잎'으로 변해 버리는 것이 우리의 삶이고 지금 우리 젊음의 모습이 아니던가? 시인은 지금 '활짝 핀 꽃'으로서의 지식인의 거만한 자의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여러 번 이 시를 읽으면서 나는 나의 이 오독, 이 불편함이 어디서 오는지 깨달았다. 우리에게는 '꽃 피는 시절'이 우리가 도달해야 할 목표, 대상으로만 존재했다. 꽃은 완성된 성공의 순간으로만 생각되었다. 그러나 우리에게 활짝 핀 꽃 시절은 '허공을 지고' 있는 바로 이 순간, 꽃대의 수직 절벽에서 떨어지는 그 시름의 순간이라는 것. 지금 나는 나의 꽃을 기다리지만, 기다리는 바로 이 순간이 내가 절정으로서의 꽃인 순간이라는 것. 꽃 피고 꽃 지는 것이 모두 하나의 자리이고 하나의 모습이다. 당당해지자고 시인은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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