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정치와 캐디

재작년 11월 미국여자프로골프(LPG A) '올해의 선수' 시상식에서 박인비는 호주 출신의 캐디 브래드 비처를 언급하며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내가 이룬 성공은 결코 상상할 수 없다"고 깊은 감사를 표했다. 2007년 루키 때 처음 짝을 이룬 이후 2013년 시즌 6승을 수확하며 세계 랭킹 1위에 오르기까지 7년여간 둘은 LPGA 투어 9승을 합작했다. 비처는 박인비가 2008년 US오픈 우승 이후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으나 떠나지 않고 곁을 지켰다.

선수와 캐디는 바늘과 실의 관계다. 완벽한 호흡과 신뢰'존중의 파트너십은 기본이다. 캐디는 필드 환경은 물론 선수의 심리, 컨디션까지 파악해 조력자 역할을 해야 한다. 자식의 성공을 위해 기꺼이 골프백을 메는 '골프 대디'가 종종 눈에 띄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올해 유러피언투어 BMW PGA챔피언십에서 첫 우승한 안병훈과 안재형, 작년 LPGA 요코하마클래식 우승자 허미정과 '가장 헌신적인 캐디'로 뽑힌 최운정의 아버지도 골프 대디로 필드를 누볐다.

프로골프에서 선수가 좋은 성적을 거두면 캐디 또한 명예와 부를 얻는다. 세계 1위 선수의 캐디만 입을 수 있는 녹색 조끼인 캐디 빕(Caddie Bib)이나 우승 경기의 18홀 깃발을 챙기는 것도 캐디의 전유물이다. 가장 뛰어난 선수를 도운 최고의 조력자만 누리는 특권이다. 선수와 캐디가 깊은 신뢰 없이 불화하면 이룰 수 없는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정치권을 향해 '배신의 정치'라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선거에서 반드시 심판해 달라는 주문까지 했다.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무리한 국회법 개정 추진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했지만 청와대는 문책을 굽히지 않았다.

그동안 유 대표의 정치 행보는 여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많은 우려를 샀다.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하지 못한 패착이 이어졌다. 자존심 정치를 해온 여당 지도부도 문제지만 사태를 수습하고 국정 리더십을 회복해야 할 청와대가 이런 식으로 계속 풍파를 일으키는 것은 결코 옳지 않다. 세월호 참사와 연금 개혁, 메르스 사태 등 국정 혼란에서 청와대의 부채가 더 많다.

청와대와 여당은 선수와 캐디의 관계다. 역의 관계도 성립한다. 파트너십을 망각하고 남 탓만 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 당청이 불신으로 틈이 벌어진다면 그 화는 여권 전체에 미치고 최대 피해자는 국민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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