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물건을 사용할 때는 주인의 동의나 승낙을 받는 게 당연하다. 하물며 사람의 몸을 대상으로 검사 및 치료를 하거나 임상연구를 할 때 동의나 승낙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의학의 눈부신 발전 뒤에는 수많은 연구가 존재한다.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고 의학지식의 향상과 의료기술의 발전을 위해서는 인체를 대상으로 한 의학실험이 불가피하다. 아무리 동물실험을 많이 한다고 해도 인체에 대한 연구를 통하지 않으면 새로운 의학지식과 기술의 과학적인 정당성이 입증될 수 없다.
그러나 인체 실험은 종종 범죄자와 정신질환자, 고아, 지체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을 실험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잔혹한 인권침해라는 결과를 초래했다.
하버드대학의 마취과 교수였던 헨리 비쳐 박사는 1966년 '뉴잉글랜드 의학잡지'에 '윤리와 임상연구'라는 유명한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서 그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서 행해진 22개의 비윤리적인 임상연구의 예를 기술했다.
그중 하나는 각기 다른 두 가지 치료법에 따라 장티푸스 재발을 측정하는 연구였다. 연구진은 클로람페니콜이라는 항생제의 효과를 시험하기 위해 408명의 환자 중 251명에게는 항생제를 투여하고, 나머지 157명에게는 대증요법만을 적용해 어느 쪽이 재발률이 높은가 비교했다. 항생제를 투여한 환자는 20명이 사망해 치사율이 7.9%였지만 대증요법만을 시행한 환자는 36명이 숨졌고, 치사율이 22.9%에 이르렀다. 사망한 환자 중 23명은 항생제를 썼더라면 죽지 않았을 사람들이었다.
또 다른 연구는 암의 면역기전에 대한 이해와 암의 항체 요법이 효과가 있는지 알아보는 게 목적이었다. 연구진은 딸의 악성 흑색종 조직을 환자의 어머니에게 이식했다. 암 말기였던 딸은 어머니에게 암 조직을 이식한 다음 날 사망했다. 따라서 딸은 어머니에게서 생긴 암의 항체 치료를 받을 수 없었다. 어머니에게 이식된 암 조직은 이식한 후 24일째 되는 날 다시 도려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암 조직 이식 후 455일 만에 흑색종이 전신으로 전이되어 사망했다.
비쳐 박사의 논문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의학 연구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됐다. 그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연구에는 반드시 실험 대상자의 승낙 여부를 연구 논문에 기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승낙에도 일정한 조건이 있다. 우선 승낙하는 사람이 자신이 무엇을 승낙하는지 충분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고지된 승낙'이라고 한다. 둘째, 동의하는 내용 자체가 합리적이어야 한다. 셋째는 동의와 승낙 자체가 자발적이어야 한다. 의학의 발전과 더불어 의학 윤리에도 많은 발전이 이루어져 온 것이 사실이다. 임상연구뿐 아니라 진료의 과정에서도 검사 및 처치, 수술 등에 대해 환자에게 설명하고 동의서를 받는 것이 일상이 됐다. 환자나 피실험자에 대한 보호가 더 강화되는 의학윤리의 발전을 기대한다.
윤창호 경북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국정원, 中 업체 매일신문 등 국내 언론사 도용 가짜 사이트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