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와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 사이의 갈등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공수가 바뀌는 모양새다. 지난달 25일 박근혜 대통령의 '조준사격'에 한껏 몸을 낮췄던 유 원내대표가 당내 지지를 등에 업고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적어도 거취를 고민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은 확보했다.
유 원내대표는 지난달 25일 의원총회에서 재신임을 받은 데 이어 29일 당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최고위원회의에서도 거취결정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았다. 나아가 1일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선 유 원내대표의 사퇴 불가론이 대세를 이뤘다. 박 대통령이 '여당 원내사령탑과 함께 할 수 없다'고 퇴출선언을 한 지 엿새 만에 상황이 반전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유 원내대표에게 주어진 선택의 폭은 넓지 않다. 여전히 당청 갈등의 중심에 서 있는 데다 여당 원내대표로서 현직 대통령과 계속 맞설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비박 세 과시하며 유 원내대표 엄호
1일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비박(비박근혜)계 의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반대했다. 친박(친박근혜)계인 김태호'이인제 최고위원의 사퇴요구가 있긴 했지만 사퇴 불가론이 대세였다.
유 원내대표 사퇴 반대론자들은 당내 의사결정 과정에 충실했던 유 원내대표에게 정치도의상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되며 수평적 당청 관계를 위해서라도 대통령의 사퇴요구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대구경북 최다선인 이병석 의원은 "국회법 개정안 처리 당시 유 원내대표는 의원들로부터 대야협상권을 위임받아 협상을 벌였고 협상결과는 의원총회에서 토론을 거쳐 최종 확정됐다"며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도 존중하지만 (유 원내대표의) 거취에 대한 의원들의 의사도 존중해야 한다"고 사퇴불가 입장을 밝혔다.
이 의원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소통과 설득의 리더십'을 언급하며 청와대가 더 소통을 많이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친이계 좌장인 이재오 전 최고위원 역시 유 원내대표의 손을 들어줬다. 그는 "전당대회 때 수평적 당청 관계를 이끌어 가겠다고 다짐했던 최고위원들이 지금 그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는지 생각해 달라"며 "당은 국민을 보고 정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최고위원은 "의원총회 결과를 대통령에게 잘 전달해야 할 지도부가 거꾸로 청와대 의견만 (당에) 전달하고 있다"며 친박계를 겨냥하기도 했다.
반면 친박계는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압박했다. 김태호 최고위원은 "원내대표는 청와대와 생각을 같이해야 한다"며 "(정국해법을) 잘 알고 있는 유 원내대표가 이를 왜 외면하는 것인가"라고 사퇴를 요구했다.
이인제 최고위원 역시 "원내사령탑은 야전사령관이고 대통령은 총사령관인데 조율에 실패했다. (유 원내대표가) 파국을 책임지고 수습해야 한다"며 유 원내대표의 '책임'을 강조했다. 친박계 서청원'이정현 최고위원은 이날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묘수 찾고 있지만 뾰족한 대안 없어
유 원내대표는 연일 자신에 대한 당내 지지를 확인하고 있지만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언제 다시 터질지 모르는 당청 갈등의 불씨가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현직 대통령으로부터 '함께 갈 수 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은 상황이라 더욱 고민이 깊다.
무엇보다 박근혜정부를 성공시켜야 하는 여당 원내대표로서 국정표류가 불가피한 전면전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동료 의원들의 응원을 뒤로하고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나는 일도 쉬운 일은 아니다.
동료의원들의 응원에 '입법부의 권위를 지켜 달라'는 요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자신의 정치적 미래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유 원내대표는 1일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위한 당정회의를 챙기고 국회를 정상가동하며 평상심을 찾고자 했지만 대통령과의 소원한 관계는 떨칠 수 없는 부담이다.
유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중진연석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상황 변화없고 할 말 없다"고 짧게 입장을 밝혔다.
유광준 기자 june@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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