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야영'이란 이름으로 즐겼던 캠핑의 아련했던 추억이 떠올라 장성하여 일가를 이룬 나, 그리고 캠핑을 처음 알았던 그때의 나보다 더 어린 아들을 데리고 캠핑을 시작했다. 몰라서 용감했던 첫 캠핑의 날카로운 추억은 이렇게 시작됐다.
최근 10년 동안 캠핑은 대중적인 레저로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고 지금도 꾸준히 그 저변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오늘날처럼 세련된 형태는 아니었지만 1980, 90년대 나의 유소년 시절에도 야영이라는 이름으로 적지 않은 동호인들이 여가를 즐겼음을 기억한다. 필자 또한 학교의 보이스카우트 활동이나 아버지의 휴가 때 내 몸무게만큼 무겁던 주황색 캐빈 텐트를 치고, 계곡과 바다에서 보낸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당시의 야영은 봄, 여름만의 전유물이었고 오직 한 칸짜리 텐트 말고는 요즘의 타프(그늘막)나 전실 개념이 전무해 비가 오면 좁은 텐트 안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고, 뙤약볕에 속수무책으로 늘어져 낮에는 계곡물이나 나무 그늘을 벗어날 수 없었다. 분명히 지금이나 그때나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불변의 진리는 통용될 텐데, 그 다수의 불편함에 대한 기억은 희미해진 대신 몇 가지의 즐거운 추억만이 또렷이 남아, 장성하여 일가를 이룬 나와 그때의 나보다 더 어린 아들을 캠핑으로 이끌었다.
시작은 매우 간단했다. 나름 어릴 적에도 텐트를 직접 치고 걷고 했던 경험이 있거니와 보이스카우트에서 습득한 잡다한 야영 스킬들이 건재하리라 자신하고 있었다. 마침 대형마트가 구성한 특판 코너에서 폴대가 내장된 획기적인 텐트를 신기해하며 구입하고, 뭔가 편해 보이는 접이식 의자를 사려니 두 개면 텐트 비슷한 가격이 됨에 깜짝 놀라 바비큐 그릴, 간편한 텐트만으로 절반은 준비를 마쳤다 여겼다. 테이블은 동네 아는 치킨집 사장님께 접이식 원형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를 함께 빌리고, '부르스타'라 불리는 휴대용 가스버너와 집 냄비는 무거운 감이 있으니 쓰고 버릴 요량으로 양은 냄비 하나, 식기 등 나머지는 일회용품으로 구비하여 의기양양하게 근교의 캠핑장을 예약하여 출발하였다.
때는 7월의 마지막날에서 8월로 넘어가던 시기, 처음 개봉한 텐트를 더듬더듬 구축하는 와중에도 소나기는 오락가락했다. 새 텐트에는 망치가 없어 옆에 있던 돌멩이로 기본 구성으로 나온 부실한 팩(텐트 고정용 못)을 예상보다 단단한 땅에 박으려니 팩이 쇠젓가락처럼 휘어졌다. 다행히 팩의 설치가 부실하더라도 자립 가능한 퀵 텐트라 급한 대로 모양은 금방 갖추었다. 텐트 밑엔 마트에서 몇 개 집어온 박스를 펴주고 안에는 은박돗자리를 깐 뒤, 저렴하여 매우 꿀렁대는 에어매트로 잠자리를 마련하고 집에서 쓰던 여름 이불을 올리니 나름 뽀송뽀송한 느낌에 어린 아들과 낮잠도 즐길 수 있었다. 한바탕 소나기가 또 지나가고 비장의 파라솔 꼽히는 편의점 원탁을 펴고 식사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어릴 적의 야영 때는 보통 돗자리나 텐트 바닥에서 조리와 식사를 해결하다 보니 모양새도 불편함도 말이 아니었는데, 이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요즘 캠핑장을 생각하면 낙후된 시설이지만, 과거의 야영에 비하면 온수 나오는 샤워장과 수세식 화장실, 개수대도 갖췄으니 별천지가 따로 없었다.
앞의 도랑에서 아이와 물놀이를 하고 나니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야영에서 전기를 쓸 수 있으니 밤도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의기양양하게 준비해간 작업등을 꺼내서 파라솔에 연결하려는데, 잘 챙겨두었다 생각한 전원 연장선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전등은 포기, 첫 캠핑에 근사한 랜턴이 있을 리 만무하고 테이블을 가까운 가로등 아래로 옮기고 손전등으로 비춰가며 그릴에 준비해간 고기와 고구마 이것저것을 구워 조촐히 저녁을 마쳤다. 물놀이로 피곤한 아이를 씻기고 먼저 재운 뒤 혼자 컴컴한 테이블에 앉아 맥주 한 잔을 들이켜며 주변을 돌아보니 이제야 신세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멀찍이 건너편 사이트에 세 가족 정도가 모였는데 타프로 천장을 드리우고, 비싸서 안 샀던 그 접이식 의자(릴랙스체어)가 인원수대로 구비되어 환한 조명(LED바) 아래의 고급스러운 테이블엔 전문 요리점 같은 근사한 만찬이 펼쳐지고 있었다. 간사하게도 그때까지 어린 시절 야영과 비교하며 매우 편하다 생각했었는데 저렇게라면 이렇게 좋은 캠핑을 매주 다녀도 되겠단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알기 전까지도 야영은 마냥 즐거울 따름이었지만 장비의 보강 없이 지속했다면 결국 불편한 외박에 휴가철 연중행사 정도로만 캠핑을 즐기지 못했을 것이다. 아는 만큼 즐거움도 커진다 했던가. 다음날 집으로 돌아온 뒤 인터넷 검색과 관련 동호회를 돌아다니며 최신 용품들을 파악하기 시작했고, 내게 필요한 것들을 추려 위시리스트에 채워 넣었다. 나와 어린 아들의 행복한 추억 만들기, 본격적인 캠핑 라이프의 시작이었다.
김정기(캠핑 동호인)
◆연재 시작하며
이것저것 만들기와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요리를 취미로 가진 자영업자로 8살 아들과 함께 대구경북 인근의 캠핑지를 순례 중입니다. 대단한 정보는 아니지만 그때마다의 일화를 통해 소소한 팁과 부족한 경험이나마 나누고자 합니다. 준비가 많으면 많은 대로 즉흥적이면 또 그 나름대로 즐거운 캠핑, 짧은 글로 전해지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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