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후배가 고민을 털어놓았다. 내용인즉, 중2 아들이 학교에서 친구와 놀다가 싸움을 하고 저들은 서로 화해를 했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애들이 사소한 싸움이라도 하면 폭력대책위원회를 열어 아이들 생활기록부에 기록하고 그 애는 꼬리표가 붙어서 끝장이라는 것이다.
"설마 그럴 리가, 우리 때는 원수같이 싸우면서 자랐는데"라고 하니까 "언니는 구닥다리야. 세상을 너무 몰라"라고 하면서 울상이었다.
시쳇말로 시대가 바뀌어서 나는 구닥다리가 되었다. 어렸을 적 우리 집에는 여섯 명의 형제자매가 오글오글 모여 지냈다. 동생과 머리채를 잡고 싸우기도 했으며, 언니에게 대들다가 물려받은 교복을 빼앗기기도 했다. 반찬 투정을 하다 밥상머리에서 쫓겨난 적도 있고, 네 명의 동생들을 훈육하기도 했다.
가정이 작은 사회였다. 여럿이 함께 크면서 동생을 돌봐야 하는 것과 양보와 배려를 익히게 되었고, 무엇이든 나누어 먹으면서 나중에 오는 사람을 위해 남겨 두어야 하는 것도 익혔다. 친구들과도 마찬가지였다. 놀다 보면 서로 부주의로 다치기도 하고 뜻이 맞지 않아 싸우기도 했지만, 이튿날 학교 가는 길에는 동구 밖에서 기다렸다가 함께 가면서 언제 싸웠느냐는 듯이 친하게 지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그래야만 되는 줄 알았다.
지금은 머리채를 잡고 싸우며 자란 동생들과 가장 가깝게 지낸다. 또 아옹다옹 싸우면서 학창 시절을 보낸 그 친구들이 가장 보고 싶다. 다 커서 만난, 싸움 한 번 하지 않고 지낸 십년지기 이웃은 아직도 낯설다.
학교폭력은 생활기록부 기재를 강제하는 등 대책을 펴도 효과를 내지 못하고 오히려 증가했다고 한다. 행여 사소한 것까지 생활기록부에 기재하여 학교폭력을 양산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요즘 아이들은 형제 없이 자란 탓에 부대끼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서 친구들과 언쟁을 하며 서로 옷깃을 스치는 것까지 학교폭력이라고 한다면, 더불어 살 수 없는 불쌍한 사람이 된다. 폭력은 근절되어야 하지만 아이들이 커가는 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것까지 폭력으로 매도해서 서로 반목하여 친구가 없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구닥다리인 나는 감히 말한다. 아이야, 얼마든지 옳고 그름을 따지고 자기주장을 펴면서 서로 다른 생각으로 친구들과 많이 싸워라. 그리하여 작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면 어서 펴고 화해를 하여라. 가장 많이 부대낀 친구가 훗날 진정한 친구이다.
도덕은 가정에서, 여러 형제 속에서 먼저 익혀야 하는데 지금의 아이들은 외롭게 자라고 있어 머지않아 도덕도 과외받지 않을까 염려된다. 법과 규칙만을 강조하여 그들을 통제할 것이 아니라 가정이 곧 사회임을 인식시켜야 한다. 그날 나는 후배에게 우스갯소리로 아이에게 동생을 낳아주라고 말했다. 분명한 것은 아이들은 커가면서 수없이 변화한다는 사실도.
문차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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