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넘게 우리나라를 벌벌 떨게 한 메르스가 다행히 진정세를 보이고 있다. 메르스 사태를 지켜보면서 우리는 또 한 번 정부의 초동 대응에 분개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1년 전 세월호 사태 때가 오버랩됐다. 그중에서도 엄청난 메르스 노출자가 발생할 때까지 병원 이름 등을 공개하지 않은 것은 두고두고 후회되는 점이다. 국민 혼란을 일으키고 병원의 진료 기능을 마비시킨다는 허울뿐인 명분에 갇혀 '방역 골든타임'을 놓친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세계보건기구(WHO) 합동평가단조차 정부의 비공개 원칙이 사태를 키운 오착(誤錯)으로 규정했다.
그러는 사이 온라인 공간은 '정보 전쟁'을 방불케 했다. 한 누리꾼이 제작한 '메르스 확산 지도'가 빠르게 퍼지는 등 국민은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통해 쉴 새 없이 정보를 퍼다 나르며 실시간으로 공유했다. 이번 사태에서도 이른바 '앵그리맘'들의 활약은 대단했다. 앵그리맘은 지난해 3월 방영된 TV 드라마 이름에서 유래된 용어로 자녀의 교육과 관련한 사회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30, 40대 여성들이다.
한 지인도 가히 '앵그리맘'이라 칭할 수 있다. 얼마 전까지 그녀는 대구의 대표적인 인터넷 육아 카페를 하루에도 수십 번 들락날락거렸다고 한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게시글을 보면서 정보를 얻는가 하면 그 내용을 SNS를 통해 주위 사람들에게 즉각적으로 보냈다. 또한 자신이 아는 정보를 발 빠르게 카페에 올리기도 했다.
그녀는 "메르스와 관련해 뭔가 정보를 얻으려고 했는데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찾아봐야 할지 잘 모르는데 그나마 엄마들이 모인 카페에서는 회원들의 가족이 있다 보니 정보들이 많이 올라왔다. 내용이 맞든 틀리든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카페에 자주 접속했다"고 털어놨다. 그녀는 뉴스를 통해 나오는 정보보다 오히려 커뮤니티 정보가 더 빠르고 상세할 때가 많았다고 했다. 예를 들어 대구의 메르스 첫 확진자인 K(52) 씨의 동선도 뉴스에 나오기 훨씬 이전부터 카페에 자세하게 올라왔다고 한다.
앵그리맘들은 메르스 사태에 대해 특히나 민감하게 반응했다. 한 포털사이트에 따르면 메르스 사태가 극에 달했던 지난달 5일 오후 '여성들이 많이 본 뉴스' 집계에선 메르스 관련 소식이 1위부터 10위까지 차지했다. 남성들이 많이 본 뉴스 상위 10위 가운데 메르스 관련 소식은 3, 4건에 불과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메르스 사태 이후 한 포털사이트의 여성 접속자도 20~30% 늘었다고 한다. 남편이 바깥 일에 매달리면서 개인위생에 다소 소홀한 문제로 부부싸움도 잦았다는 후문이다.
앵그리맘들은 정보 공유에만 그치지 않고 관계기관에 청원도 주저하지 않는다. 대구에서 첫 메르스 환자가 나오자, 일선 학교에 '휴교'를 요구하는 사례도 잇따랐다. 특히 지난달 16일부터 한동안 대구시교육청에 "메르스 확진자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빨리 휴교령을 내려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그렇다면 평범한 주부들이 왜 분노에 찬 앵그리맘이 됐을까. 또 다른 지인인 정모(42'여) 씨의 이야기는 그에 대한 답변이 충분히 될 듯하다. 정 씨는 "지난해 세월호 사태 때 정부는 '괜찮다', '믿고 기다려달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런 모습이 이번에도 판에 박힌 듯 똑같이 나타났다. 상당수 국민은 정부의 태도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결국 '각자도생'(各自圖生)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늑장대응보다는 과잉대응으로 예방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에 대한 분노와 불신이 그만큼 깊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앵그리맘들의 목소리를 곱씹어야 한다. 메르스 괴담 유포자를 엄벌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보다는 정확히 알리고 국민에게 진정성 있는 협조를 구하는 모습이 이들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을 것이다. 정부의 지성과 현명함이 필요한 때다.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정진호의 매일내일(每日來日)] 3·1절에 돌아보는 극우 기독교 출현 연대기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김세환 "아들 잘 부탁"…선관위, 면접위원까지 교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