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은 게으름도 멈춤도 아니다. 일만 알고 휴식을 모르는 사람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위험하기 짝이 없다."
미국의 자동차 회사 '포드'의 창립자이자 '자동차 왕'이라 불리는 헨리 포드가 남긴 말이다. 그의 말처럼 여유와 휴식은 더 나은 내일을 위한 투자이다.
광복 이후 급속한 현대화와 함께 우리 삶은 여유를 잃어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흥과 멋도 없는 모습으로 여가를 보내고 있다. 학생들은 방과 후나 방학이면 PC방으로 몰려가 롤(온라인 PC게임 'Legue of Legend'의 약자 'L.o.L'을 일컫는 말)하기 바쁘다. 직장인은 고주망태가 될 때까지 술을 마시는 것이 놀이의 전부라고 할 정도가 되었다. 휴식과 놀이를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것일까. 우리는 언제부터 놀이문화를 잊어버리게 된 것일까.
이번 주 '즐거운 주말'은 점차 획일화되어 가는 우리의 놀이 문화를 짚어본다. 외국인들은 어떤 시각으로 한국인들의 놀이문화를 보는지도 알아보고, 대구경북인 중에서 풍류를 즐기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찾아본다.
홍준표 기자 agape1107@msnet.co.kr
◇왜 놀아야 하나
대한민국에서 풍류 DNA가 사라지고 있다.
정(情)이라든지 한(恨)처럼 한민족의 정서를 규정하는 여러 가지 말이 있다. 이 가운데 흥(興)도 있다. 중국의 사서인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서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무천, 삼한의 세시풍속 등에 대한 기술을 보면 한민족이 노래와 춤 그리고 술을 무척 즐기는 축제민족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삶은 과거와 너무 다르다. 지친 심신을 달래고자 술을 마시고, 술 깨려고 노래를 부르며, 지친 목을 풀고자 또 술을 마신다.
◆우리는 어떻게 놀고 있나?
약 15년 전 PC방 아르바이트생들이 방학이 다가오면 했던 우스갯소리가 있다. 바로 "초글링이 몰려온다!"라는 말이다. 초글링은 PC게임 '스타크래프트'의 저글링에서 비롯된 말로 초등학생과 저글링의 합성어이다. 동네 PC방에 초등학생들이 떼로 몰려오는 모습이 마치 저글링과 비슷하다는 뜻이다. 그 시절 초글링들이 성인이 된 지금은 삼삼오오 모여서 혹은 혼자서 롤(LoL)을 하러 PC방에 간다.
대학생 최홍림(25) 씨는 "어릴 때부터 친구들과 노는 건 '게임을 한다'로 굳어진 것 같다. 그래서 지금도 혼자 있는 시간이면 딱히 할 게 없고 심심하니깐 시간을 때우러 PC방에 간다"고 했다.
이는 비단 '초글링 세대'만의 모습이 아니다. 우리 모두 초글링 세대와 다를 바 없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전국 17개 시'도에서 만 15세 이상 남녀 1만 명을 상대로 시행한 '국민여가활동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 조사에서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 여가시간은 종전보다 늘었지만, 주로 텔레비전 시청, 인터넷 검색, 산책 등 소극적 휴식 활동을 하면서 보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형별로 살펴보더라도 휴식이 62.2%로 가장 많았고, 취미'오락 활동(21.1%), 스포츠 참여활동(8.6%) 등이 뒤를 이으면서 소극적 여가활동의 비중이 높게 나왔다. 또한 여가활동을 혼자서 하는 경우(56.8%)가 가장 많았고, 이어서 가족과 함께하는 경우(32.1%), 친구와 함께하는 경우(8.3%)의 순서대로 조사됐다.
◆노는 걸 억압하는 사회
안타깝게도 우리는 '논다'는 것에 억압적인 사회에서 살고 있다.
우리말 '놀다'에는 부정적 인식이 기저에 깔려 있다. 중'고등학생에게 '노는 아이'는 학교에서 한 주먹하는 일진이나 불량학생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성인에게 '남녀가 논다'라는 말은 두 남녀가 진지한 만남이 아닌 성적인 관계만을 추구하는 사이를 뜻한다. 실제로 국어사전에서 '놀다'는 '주색을 일삼아 방탕하게 지내다' '불량한 무리가 나쁜 짓을 일삼으며 지내다'라는 뜻이 있다.
일상에서도 부모들은 경쟁적인 사회에서 자기 자녀가 살아남길 바라며 자녀에게서 놀이의 즐거움을 빼앗는다. 웬만한 회사원보다 바쁜 요즘 학생들은 학교를 마치면 학원으로, 학원을 마치면 집으로 돌아가서 잠들기 전까지 과제를 한다. 높은 교육열로 휴식할 시간이 모자라다. 한국인의 평균 학습시간은 1.1시간으로, OECD 평균보다 2배가량 높다. 15~24세 한국인의 하루 평균 학습시간은 5.4시간으로, 일본(4.2시간), 미국(2.1시간)보다 높다.
부모들도 마찬가지다. 한국인의 연간 근무시간은 멕시코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며, OECD 평균과도 300시간 넘게 차이 난다. 이렇게 노동시간이 길다 보니 여가활동이 가능한 시간은 늦은 저녁에 집중돼 있다. 그러나 지친 몸은 잠자기 바쁘다. 장시간 노동의 여파는 휴식의 양뿐 아니라 질에도 영향을 끼친다. LG ERI 리포트 '한국인의 여가 양적 질적으로 미흡하다'에 따르면 한국인의 여가활동 중 가장 긴 시간을 차지하는 건 TV시청으로, 하루 평균 약 2시간에 이른다. 그다음은 낮잠. 결국, 자리에 앉아서 보내는 비활동적인 여가활동이 65.2%에 달했다. 한국인이 희망하는 여가생활은 외국여행, 영화관람, 등산 등을 꿈꾸지만 지친 몸을 이끌고 소파에 누워 TV 속 여행 프로그램을 보는 게 현실이다.
◆왜 놀아야 하는가?
그런데 왜 소극적 휴식이 아니라 놀아야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인간을 규정하는 몇 가지 용어가 있다. 사유가 인간의 본질이라는 호모 사피엔스, 일하는 인간을 뜻하는 호모 파베르 등. 이 가운데 '호모 루덴스'라는 말이 있다. 이는 '유희하는 인간'이라는 뜻으로 사회학자인 요한 하위징아가 그의 저서에서 소개한 인간형이다. 사실 놀이는 일과 생산, 합리적 제도를 중심으로 하는 사회에서 부차적인 활동으로 취급돼왔다. 하지만 하위징아는 이런 인식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문화사회학에서는 놀이를 문화의 한 부분이라고 보지만 그는 반대로 '놀이는 문화의 한 요소가 아니라 문화 그 자체'라고 주장한다.
놀이는 인간의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활동이다. 쳇바퀴를 도는 일상에서 벗어나 휴식과 놀이를 즐김으로써 인간의 두뇌 능력은 재충전된다. 또한 인간은 놀이를 통해 규칙성을 익히고, 성취감을 느끼며 문제해결력과 집중력을 얻을 수 있다. 여럿이서 놀이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깨닫게 된다. 이런 면에서 놀이는 교육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심리학자 장 피아제와 레프 비고츠키를 비롯한 많은 학자는 교육에서 놀이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놀이는 인지발달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뇌의 상태를 최적화시키는 한편 창의력과 사회성을 발달시킨다는 것이다.
홍준표 기자 agape1107@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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