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개그의 품격…권력의 품격

1982년 전북 익산생. 서강대 언론대학원 재학(미디어교육 전공). 2007년 MBN 입사
1982년 전북 익산생. 서강대 언론대학원 재학(미디어교육 전공). 2007년 MBN 입사

거침없는 토크쇼의 1인자로 불리는 미국 CBS '레이트 쇼'의 데이비드 레터맨이 지난 5월 마지막 방송을 마쳤다. 전'현직 대통령들은 "악몽이 끝났다"며 속이 시원하다는 작별인사를 건넸다. 오바마 대통령도 트위터에 "당신 없는 TV는 예전 같지 않을 것"이라는 글을 남겼다. 하지만 정치 풍자를 단골로 하는 미국 방송사들은 이 틈을 타 더 독한 풍자를 내세운 심야 토크쇼를 내놓기 시작했다.

미국 ABC의 간판 토크쇼 '지미 키멜 라이브'에는 유명 인사들이 출연해 자신과 관련된 '악성댓글'을 읽는 코너가 있다. 방송에 직접 나온 오바마 대통령을 앞에 두고 진행자는 "대통령이 요즘 머리가 센 것 같다. 누가 오바마에게 좋은 대통령이 될 수 있게 비법 좀 알려줘라"라는 트윗을 소개했다. 골프광인 오바마 대통령을 비꼬는 댓글을 대통령 본인이 읽는다. "오바마를 세계 어디쯤의 골프 코스 한복판에 데려가서 놔두고 오면 안 될까?", 오바마 대통령은 "정말 좋은 생각"이라며 특유의 재치 있는 답변으로 웃어넘겼다.

현 정권 최고 권력인 대통령을 앞에 모셔놓고 악성댓글을 읽으며 방청객과 시청자가 함께 웃는 방송을 만드는 미국의 눈에 대한민국의 현실은 어떻게 보일까? 미국 국무부가 최근 '국가별 인권 보고서'를 내놨는데, 우리나라는 '표현 자유' 분야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방송과 인터넷에 대해 윤리적 기준을 고수하고 있다"거나 "유엔 특별조사관도 방통위가 정부나 대기업에 대한 비판을 함부로 지우는 검열기구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안전장치가 부족하다"고 우려를 표시했다.

지난달 KBS2 TV '개그콘서트'의 '민상토론'이란 정치풍자 코너가 외압설에 휩싸이며 한 주 결방됐다. 당시 개그맨들은 "정부 대처가 빨랐더라면 일이 이렇게 커지지 않았다?" "복지부 장관이 한심하다?" 등의 대사를 하며 정부의 '메르스 사태 초동대처 미흡'을 주제로 다뤘다. 이에 방통위는 '불쾌감, 혐오감 등을 유발하여 시청자의 윤리적 감정이나 정서를 해치는 표현'을 했다는 이유로 '의견 제시' 처분을 내렸다. '의견 제시'는 가장 낮은 수위의 결정이다. 하지만 여론은 정치 풍자에 대한 국가적 탄압의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민상토론'의 결방에 대해 KBS 측은 외압설을 부인하며 향후 방송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이후 '민상토론'은 재개됐고, 외압설을 떨쳐내려는 듯 더 신랄하게 정치권을 꼬집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니 지난 문제의 방송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있었다. 바로 살아있는 권력이 아닌 지나간 권력에 대해 풍자했다는 것이다. "4대강 사업 때문에 환경이 파괴됐다는 거냐" "MB가 그렇게 싫습니까?" 등 더 직설적이고 독해진 발언으로 시청자들의 속을 후련하게 해줬지만 현 정부를 겨냥하지는 못했다. 외압설이 설로 끝날 것 같지 않은 이유다.

정치 풍자 프로그램을 보는 사람들은 반응에 따라 두 부류로 나뉜다. 통쾌하게 웃는 사람과 불쾌감을 느끼며 웃지 못하는 사람이다. 풍자의 대상이 되는 주요 인물들은 웃자고 만든 개그를 보면서도 내내 불편함을 감추지 못하지만 대다수의 국민은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풍자 넘치는 개그를 보며 희열을 느낀다. 일부 비판의 대상만이 느끼는 불쾌감을 핑계로 다수의 국민이 즐겨 보는 개그 프로그램에 경고를 내린다는 것이야말로 진짜 블랙코미디 감이다. 진정 '국민의 윤리적 감정이나 정서'를 위한다면 연평해전 용사들의 전사를 '개죽음'이라 표현하고 대통령에게 '귀태' 발언을 했던, 막말과 욕설이 난무하는 정치권에 대해선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국민은 불쾌감과 혐오감을 주는 정치권에 중징계를 준비 중이다.

이정미/MBN 앵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