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고3들은 여러 번의 전국단위 모의고사를 치렀다. 지금까지 치렀던 시험들은 작년'재작년 복수 정답으로 홍역을 치렀던 것과 정부가 쉬운 수능 기조를 천명한 점 때문인지 답을 아주 명확하게 하려고 한 것이 특징적이다. 국어의 경우는 토씨 하나의 미세한 차이로도 해석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아예 정답과 오답의 차이를 크게 두는 경향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국어 100점을 맞은 학생들을 불러내서 간증(?)을 하게 하면 "지문하고 안 맞고, 말 안 되는 답지를 하나씩 골라내다 보니 큰 내적 갈등 없이 45번까지 가게 되었습니다."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당연한 말 같지만 자기만의 생각에 너무 깊이 빠져 확실하게 틀린 것은 놓쳐버리고, '그렇게 볼 수도 있는' 내용을 선택해서 틀리는 경우가 많은 학생들은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그런데 문제가 쉽게 출제되다 보니 예전에는 학생들이 쉽게 맞혔던 어휘 문제에서 등급이 나뉘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한다. 어휘 문제는 주로 지문에 담긴 정보량이 떨어져 문제로 낼 수 있는 내용이 많지 않을 때, 출제 마감이 임박했는데도 문제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을 때 팀장의 직권으로 긴급히 만든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최근 수능에는 문맥적 의미, 사전적 의미, 단어 형성 원리, 사자성어 등을 묻는 문제가 최대 네 문제까지 출제가 되고 있다. 학생들은 이런 문제가 나오면 사자성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감'으로 푼다. 그러나 답지에 있는 말을 넣어보고 말이 되느냐 안 되느냐를 가지고 판단하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재작년 수능 문제이다. "푸른 난새와 붉은 봉황이 쌍쌍이 배회하며 몇몇 선동과 서너 명의 시녀가 신선 차림으로 난간 머리에 섰으며"에서 '배회하며'를 문맥상 바꾸어 쓸 수 있는 말로 '어울리며'가 제시되었다. 일부 학생들은 그 자리에 '어울리며'를 넣어보니까 자연스러웠기 때문에 맞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지만 '어울리다'는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닌다는 뜻의 '배회하다'와는 의미가 완전히 다른 것이기 때문에 대체어로는 적절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출제자들이 사용하는 일종의 기술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보통 '문맥적 의미가 유사한 것'을 찾는 문제는 사전에 있는 다의어나 동음이의어를 주로 이용한다. 예를 들어 '뽑다'의 경우 사전에 있는 것 중 몇 개만 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에서 …을】무엇에 들인 돈이나 밑천 따위를 도로 거두어들이다.¶사업에서 본전을 뽑다.
【…을 …으로】여럿 가운데에서 골라내다.¶철수를 반장으로 뽑았다.
【…을】소리를 길게 내다.¶노래를 한 곡조 뽑다.
운동 경기 따위에서 점수를 얻다.¶가볍게 선취점을 뽑았다.
문제의 출제 위원들은 대부분 사전에 있는 예문을 그대로 가져와서 답지로 사용하는데, 보면 알겠지만 다 같은 '뽑다'이지만 필요로 하는 필수 성분이 다르고, 결합하는 말의 성격이 달라서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점을 생각하지 않고 감으로 의미를 찾으려고 하다 보면 조금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사전적 의미를 묻는 문제는 다의어나 동음이의어에서 출제를 하지 않고, 약간 어려운 단어를 선택해서 문항화한다. 너무 티 나지 않게 오답을 만드는 것이 출제의 기술인데, 예를 들어 '규정'이라고 하면 '규칙으로 정함.'이 맞지만 한 글자가 같은 '규제'의 뜻풀이인 '규칙에 의해 일정한 한도를 정함.'을 오답지로 사용한다. 그러므로 이런 문제를 판단할 때는 '맞춤법 규정, 예외 규정, 대회 규정' 등과 같은 그 말이 들어간 다양한 용례들을 생각해 보고, 그것들이 과연 답지에 사용된 '한도를 정함'의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능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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