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간송의 뜻 대구에서…

기쁜 소식이다. 한국의 자랑 간송미술관이 대구관을 준비 중이란다. 일 년에 두 번만 문을 열어 한국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던 성북동 비탈길 골목 안 간송의 보화각.

봄, 가을 그 수많은 관람객의 한 사람으로 2, 3시간 줄을 서도 감동의 연속이었다. 간송미술관은 매년 그렇게 우리 미술의 역사를 바로 세우고 있었다.

간송미술관이 자랑하는 수많은 문화유산 중 대구경북과 인연을 가진 특별한 미술품들이 많다. 한국이 자랑하는 도 간송 전형필(1906~1962) 선생이 거금을 들여 안동의 고가에서 구입하여 국보로 지정되었다. 또 한국 도자기의 최고라 불리는 도 강화도 최우의 무덤에서 출토됐다는 설이 있으나 일제강점기 대구의 수장가로부터 흘러 결국 간송의 컬렉션이 되었다. 미술품의 수장은 조선 초기부터 왕실가문을 중심으로 시작되어 조선 중기 사대부의 수장과 조선 후기에 이르러 일반 평민들의 완상에 이르기까지 미술품 수장이 붐을 이루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는 전국 미술시장의 중심지는 대구와 경성이었다.

대구경북은 신라와 가야문화를 중심으로 고려, 조선을 거치며 토기류와 금속공예, 불교미술과 석물, 고문서, 전통 건축물 등 실로 동아시아 미술의 보고였다. 그것을 일찍 알아차린 조선남선합동전기 사장인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재력을 바탕으로 많은 문화재를 일본으로 옮겼다. 현재 동문동 동아백화점 건너 오구라의 저택이 자리하여 전국의 문화유산을 모았다. 그때 경성의 간송 전형필은 이러한 사실에 분개하여 홀로 애국의 길로 나아갔다. 경성미술구락부에서 열리는 경매는 물론이고 일본까지 가서 혜원 신윤복 화첩과 고려청자 등을 되사온 것은 문화를 통한 애국의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1938년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 간송의 보화각 정초명에 위창 오세창이 지은 글이 새겨져 있다. '서화는 심히 아름답고 옛 골동품은 자랑할 만하다. 이곳에 모인 것들 천추의 정화로다. 근역에 남은 주교로 고구 검토할 수 있네. 세상 함께 보배하고 자손 길이 보존하세.' 너무나 감격스러운 문장이다. 이러한 간송의 뜻을 우리 대구에 새긴단다. 장하다. 실로 기쁨을 금치 못한다! 간송과 그 후손들…, 그리고 대구시민.

사실 한국미술사에서 위대함을 자랑하는 조선의 진경산수화 위상 정립과 추사 김정희 학파의 연구, 그리고 우리 도자기의 위대함을 말할 때 간송의 한국민족미술연구소 학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들은 수십 년간 역사 바로 세우기의 일환으로 한국미술을 연구하였다. 간송미술관에 가 보신 분들은 느낄 것이다. 국가나 단체 지원금 없이 어려움 속에 버틴 간송학파의 정신을. 그러나 시대는 변모하여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시작으로 한반도 교남지방 대구에서 꽃이 피기를 기원한다. 이번 기회에 몇 가지 제안을 해본다.

이우환 미술관 건립이 무산된 성당동 부지에 간송과 한국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멋진 현대적 건축물을 디자인하는 것은 기본이며, 조선 중기 이후 대구경북 서화 및 고문서를 통한 대구경북의 잃어버린 17~19세기 전통미술의 위상을 살리는 일이다.

안타까운 현실은 아직도 훈민정음 상주본처럼 중요한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고미술 시장에서 그 문화적 가치를 모른 채 헐값에 팔리는 실정이다. 더불어 간송대구미술관에 교남시서화관을 마련하여 조선 말기의 지보 석재 서병오를 중심으로 한 교남학파의 위상을 바로 세우길 기대한다. 대구시민들과 대구시도 간송미술관 대구관을 대구의 자랑만이 아니라, 세계에 내놓을 수 있는 대한민국의 자랑으로 만들고 발전시키는 데 뜻과 역량을 모아야 할 것이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민족문화의 수호자 간송 전형필 선생님.

김진혁/화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