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0월 28일이면 그리스 주요 도시에서는 군사 퍼레이드가 펼쳐진다.
그리스인들이 이날을 기념하는 것은 제2차 대전 당시 이탈리아 무솔리니 군대에 맞서 싸워 이긴 기억 때문이다. 알바니아를 점령한 무솔리니는 1940년 10월 28일 그리스 정부에 최후통첩을 보냈다. 이탈리아군의 그리스 진입을 허용하든지 아니면 전쟁을 선택하라는 통고였다. 당시 그리스를 이끌던 이오니스 메탁사스 총리는 단호히 '오히'(Oxi)라고 답했다. 그리스 말 '오히'는 영어의 '노'(No)다. 그냥 그리스를 내어달라는 요구를 단호하게 거부한 것이다.
메탁사스 총리는 대신 "그리스의 자유와 명예를 위해 싸울 시간이 왔다"며 국민에게 무솔리니군에 맞서 싸울 것을 독려했다. 무솔리니군은 답을 받아든 그날 침공을 감행했다. 그리스 국민은 맞서 싸웠다. 그리고 승리했다. 후에 학자들은 이날 메탁사스의 답은 '오히'가 아닌 '전쟁'(la guerre)이었다고 주장했다. 어차피 결과는 똑같다. 그리스인들은 이날을 '오히 데이'라며 기리고 있다.
메탁사스 총리의 '오히'는 '오히 데이'의 단초가 됐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로부터 6개월여 만인 1941년 5월 독일군은 그리스를 점령했다. 그리스는 독일과 이탈리아 등 추축국의 점령 아래 들어갔다. 이 시기는 그리스에 가혹한 시련을 안겼다. 30만 명이 넘는 민간인이 굶주림으로 죽었다. 이보다 더 많은 사람은 보복 살해됐다.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리스가 유럽연합과 유럽중앙은행, IMF 등 이른바 트로이카가 제시한 긴축 프로그램을 받아들일지를 묻는 찬반 투표에서 또 한 번 '오히'에 투표했다. 긴축 프로그램을 받아들이면 추가로 구제 금융을 제공하겠다며 'Nai'(예)에 투표해 달라는 제안을 뿌리친 것이다. 대신 "반대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며 '오히'를 요구한 치프라스 총리의 손을 들어줬다.
'오히 데이'의 '오히'가 군사적 판단에서였다면 이번 '오히'는 경제적 판단에서다. 치프라스 총리는 승리의 축배를 들었다. 하지만 이 축배 역시 오래갈 것 같지 않다. 그리스의 앞날은 과거와 같이 어떤 선택을 해도 암울하다. 현재 그리스가 직면한 위기는 그동안 여러 차례 국가 부도 위기를 맞고서도 정치'경제 체질을 바꾸지 못한 탓이 제일 크다. 그리스 사태는 위기를 경험하고도 고치지 않는 나라의 역사는 언제라도 되풀이될 수 있음을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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