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호(가명'37) 씨의 온몸은 불그스름한 흉터로 가득하다. 혈액 투석의 부작용으로 생긴 가려움증 탓에 매일 피가 날 정도로 피부를 긁고 있다. 가려움을 도저히 참을 수 없을 땐 찬물에 뛰어들기도 한다.
경호 씨에게 더 큰 걱정은 자신보다 건강이 더 나쁜 가족들이다. 파킨슨병에 걸린 어머니와 지체장애를 갖고 태어난 여동생은 일상생활이 어렵다. 경호 씨가 가장과 주부 역할을 동시에 해야 한다.
"꿈도 많고 하고 싶던 것도 많았던 제 삶이 이렇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온 가족이 투병 중
경호 씨는 어린 시절부터 집에서 다리 쭉 뻗고 편히 누워 잤던 기억이 없다. 화장실도 없는 단칸방에서 어머니, 여동생과 부대끼며 살았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부모님이 일찍 헤어지는 바람에 집안의 가장 역할까지 떠안아야 했다.
그래도 경호 씨는 건강했다. 활발한 성격에 운동도 잘해 주위 친구들한테 인기가 많았다. 그런 자신에게 '병'이 찾아올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
"고2 때 받은 신체검사에서 알게 된 소아당뇨가 제 삶을 이렇게 망가뜨릴 줄 몰랐어요. 누구보다 활발하고 열정적으로 살아왔는데 모두 짓밟힌 느낌이었어요."
당뇨가 온 뒤부터 경호 씨는 남들보다 자신의 삶이 뒤처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가족을 위해 공부도 열심히 하고, 돈도 많이 벌고 싶었지만 쉽게 지치는 체력 때문에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그렇게 힘든 와중에도 몸을 혹사해가며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했다. 아픈 가족들의 치료비를 벌 생각으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신문 배달, 중국집 음식 배달, 식당 아르바이트를 다녔다. 빨래, 청소, 장보기 같은 집안일까지 도맡았다.
경호 씨의 이런 노력에도 어머니와 여동생의 몸은 점점 나빠지기만 했다. 파킨슨병을 오래 앓은 어머니는 요즘 온종일 누워서 지내야 하고 여동생은 최근 협심증 증세도 보이기 시작해 10분만 걸어도 숨을 헐떡인다.
"저는 괜찮으니까 동생과 어머니의 몸이라도 더 악화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막막한 치료비
자신의 치료는 뒤로한 채 가족 걱정뿐이던 경호 씨에게 운명은 잔인했다. 이른 나이에 당뇨 합병증까지 찾아온 것이다. 가장이라는 부담 때문에 자신을 돌보지도 않고 고된 일만 하며 몸을 혹사한 탓이었다.
30대 초반부터 시력이 떨어져 안구에 직접 주사를 맞아야 하는 양안 주입술을 두 차례나 받았다. 시력이 떨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이 심하게 부어 찾은 병원에서는 양쪽 신장이 다 망가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당뇨란 병을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아요. 식단 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고 휴식도 없이 일만 해 다른 사람들보다 합병증으로 고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합병증이 진행되자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던 경호 씨의 몸이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가려움증으로 온몸을 긁어 붉은 흉터가 가득한 데다 투석을 쉽게 하려고 받은 인조혈관 수술로 왼쪽 팔이 울퉁불퉁해졌다.
설상가상으로 동생의 몸에도 이상이 찾아왔다. 슬관절 돌출 증후군으로 걸을 때마다 무릎에서 소리가 나 조만간 수백만원에 달하는 인공 관절 수술을 받아야 한다. 현재 동생은 통증 때문에 목발이 없으면 집안에서도 기어다녀야 할 지경에 처해 있다.
안 그래도 경호 씨는 어머니에게 들어가는 약값과 죽을 때까지 받아야 하는 자신의 투석비에 힘겨워하고 있다. 여기에 동생의 수술비까지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진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도 수없이 생각해봤지만 저만 바라보고 사는 어머니와 여동생을 위해서라도 그런 선택은 할 수 없었어요. 다만 세 가족 치료비는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너무 막막합니다."
허현정 기자 hhj224@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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