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 북구 두호동 복합상가 내 롯데마트 입점 논란이 재점화되고 있다. 입점 반대 입장을 고수하던 포항시가 거듭된 행정소송 승소에도 불구하고 끝내 입점 허가 방향으로 가닥을 돌린 것이 발단이 됐다. 이렇듯 한동안 억눌려 있던 롯데마트 입점 문제가 다시 불거지자 주민들 간에도 찬반 입장이 극명하게 대립하며 민'민 갈등으로까지 번지고 있는 모습이다. 롯데마트 문제가 왜 이렇게 커져 버린 것인지 해당 사건의 처음부터 다시 되짚어 본다.
◆도심 한복판까지 침투한 대형마트
복합상가호텔 시행사인 ㈜STS개발은 지난 2012년부터 포항 북구 두호동 314-8번지 일원에 대지면적 1만5천145㎡에 연면적 7만1천500여㎡로 특급호텔 및 판매시설 건설을 추진했다.
이어 판매시설 부분의 임대를 약속한 롯데쇼핑㈜은 2013년 2월 연면적 4만6천926㎡, 매장면적 1만7천179㎡ 규모의 대형마트 입점을 신청했다.
두호동은 포항의 대표적 관광지인 영일대해수욕장(옛 북부해수욕장)이 있는 곳이다. 게다가 인근에 장량시장과 두호시장 등 전통시장은 물론, 포항의 가장 큰 소규모 상가지역인 중앙상가와도 직선거리 3㎞ 내에 있다.
기존 포항에 건립된 대형마트 경우, 지곡동과 이동, 인덕동 등 비교적 주거지역만 밀집한 도시 외곽에 지어졌다면 두호동 롯데마트는 포항지역에서 가장 상가가 밀집한 곳에 세워질 최초의 대형마트인 셈이다.
이에 포항시는 유통산업발전법 및 관련 조례에 근거해 롯데마트의 입점을 번번이 반려했다. 롯데쇼핑 역시 '포항시가 재량권을 남용하고 있다'며 지난해 6월부터 연이은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등 반발했지만, 매번 포항시가 승소하면서 롯데마트 입점은 계속 미뤄져 왔다. 그러나 롯데쇼핑 측은 지역상생발전협의서를 계속 보완해가며 끊임없이 포항시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상황이다.
◆예견된 갈등
반면, 롯데마트 입점 난항에도 불구하고 해당 건물의 공사는 별다른 제재 없이 착착 진행돼 왔다. 정작 마트가 들어설 건물 공사와 마트 입점 자체를 분리해서 해석한 이상한 행정이 펼쳐진 것이다.
당초 두호동 복합상가는 ㈜트러스트에셋매니지먼트가 추진하던 사업이다. 당시 특급호텔 유치가 절실했던 포항시는 호텔 건립을 전제 조건으로 소규모 마트 건물 건립을 함께 승인해 줬다. 최초 공사 계획에서는 연면적 14만3천300여㎡ 지하 5층∼지상 30층 정도로 규모도 지금보다 2배가량 더 컸다.
하지만, ㈜트러스트에셋매니지먼트가 부도 위기를 맞으며 사업은 중단됐고, 이후 지금의 STS개발이 지난 2012년 사업을 넘겨받으며 기존의 건축 설계를 변경했다. 처음 약속한 호텔과 마트의 규모가 변경되자 이때부터 포항시는 시행사인 STS개발 측과 대립을 벌이게 된다. 마트의 규모를 줄이고 호텔을 키우고 싶어했던 포항시와 달리, STS개발 측은 "호텔 운영을 하면 반드시 적자가 발생하며 이 폭을 메우기 위해 마트 규모를 줄일 수 없다"고 맞선 것이다.
STS개발 관계자는 "호텔은 포항시의 바람대로 지역발전을 위해 우리가 과감히 투자한 것이다. 오히려 당초 계획보다 호텔 건물 층수를 늘리는 등 확대했다"면서 "지금의 마트 규모는 우리가 최소한의 적자를 보지 않기 위해 필요불가결하다"고 말했다.
포항시 관계자는 "처음에는 마트를 작게 짓고 호텔을 크게 짓는 호텔 중심의 사업을 벌이겠다고 하더니 까놓고 보니 규모를 반대로 바꿔 마트 중심의 사업을 추진하겠다니 기가 찰 노릇"이라고 했다.
◆민'민 갈등 키운 포항시
그럼에도 포항시는 지난 2012년 11월 STS개발의 설계변경을 허가했다. KTX 개통과 세계군인체육대회 일부 종목 유치 등 각종 현안이 산재해 있는 상황에서 포항시로서는 특급호텔 유치가 꼭 필요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건축 허가는 내려졌지만 정작 해당 건물에 들어설 마트 입점은 반려하는 일이 이어졌다.
이처럼 이상한 행정 속에서 결국 특급호텔은 이달 1일부터 정식 영업을 시작했다. 마트 예정건물이 완공된 것은 물론이다.
마트 입점 계획 발표 초기부터 반발하던 지역 소상인들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이들은 죽도시장 등 12개 시장 상인회와 중앙상가상인회가 연합한 포항시전통상가상인연합회를 구성하고 6일부터 항의집회를 이어가는 등 포항시의 행정을 맹비난하고 나섰다.
정영생 중앙상가상인회 부회장은 "지금 발표된 마트 규모를 보면 일반백화점 의류매장 전체에 해당되는 최소 150개의 브랜드가 입점해 영업을 할 수 있게 된다"면서 "처음부터 포항시가 잘못된 욕심에 건축 허가를 내주고는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것 아니냐. 최소 생존권을 위해서라도 절대 타협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완성된 마트 건물을 바라보는 인근 주민들의 생각은 또 다르다. 생활의 편리성과 도심공동화를 우려한 주민들은 조속한 마트 입점을 촉구하며 오히려 반대 상인들을 비난하는 모습이다.
두호동과 장량동 등의 주민들로 구성된 복합상가호텔 건립 찬성 주민추진위원회는 "이미 지어진 건물을 그대로 방치하다 사업이 무산되면 저 큰 건물이 흉물로 남을 것 아니냐. 소수 상인들의 실력행사가 무서워 대다수 주민들을 우롱하는 처사"라며 "중앙상가와 죽도시장 상인들은 영세상인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정도로 부유하다. 그들을 보호하기보다 마트가 들어서지 못해 불편을 겪고 있는 영세주민들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전임 시장의 잘못?
과열된 갈등 속에서도 롯데마트 입점과 관련한 결론은 조만간 매듭지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포항시 측은 "8일까지 유통산업발전위원회를 개최해 주민추진위와 상인들의 목소리를 모아 최종 결론을 내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결론이 팽팽한 양쪽 입장을 모두 아우를 수 있을지는 사실 미지수다. 오히려 포항시에서조차 새로운 갈등을 부추길 것이란 부정적인 시각과 함께 책임 전가의 회피성 태도를 보이는 모습도 많다.
한 포항시 관계자는 "건축 허가는 정작 전 시장 시절에 내려놓고 왜 이제 와 사태를 봉합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마트 허가가 나든, 나지 않든 반대편이 쉽게 물러나겠는가. 큰 싸움이 안 나면 다행"이라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지역 시민단체에서는 행정기관이 중심을 잡고 갈등을 봉합하는 책임의식을 보여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소한 양측을 모두 납득시킬 수 없다고 해도 포항시가 나서 제대로 된 조사를 하고 명확한 지표를 도출해 최소한 양측이 모두 이해할만한 자료를 만드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박승대 포항지역발전협의회장은 "상인들은 이미 10여 년 전 포항에 롯데백화점이 들어선 뒤 절반가량의 매출 감소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들에게 또 희생을 강요하는 건 가혹한 행위"라면서 "소비자 입장에서도 탄탄한 유통망을 가진 상권이 들어와 값싸고 좋은 물건을 얻을 수 있는 기회조차 앗아가는 것을 납득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또 "무엇이 들어설 때마다 행정기관이 이렇게 무책임하게 시민들 뒤에 숨는 모습을 보이면 앞으로 포항에 어떠한 기업이 투자를 하고, 누가 이사를 오겠나. 모처럼 포항시에서 책임감 있고 줏대 있는 행정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포항 신동우 기자 sdw@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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