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대구하루'에서 대구읽기모임 주최 명사초청강연회가 열렸다. 대구하루 오픈 첫 행사인 이날 강연에는 조선학연구의 권위자인 일본 교토대학 인문과학연구소의 미즈노 나오키(水野直樹) 교수가 초대되었다. 미즈노 교수는 강연 주최가 대구읽기모임이라는 점을 고려해서인지 최규하 전 대통령과 대구의 인연을 강연 주제로 잡아왔는데, 아마도 일부 연구자를 제외하고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였기 때문에 짧게나마 소개를 하고 싶었던 듯하다. 하지만 대구읽기모임 회원들에게 최규하 전 대통령과 대구중학교에 얽힌 에피소드는 이미 잘 알려진 내용이라 이날 강연회에서 열띤 토론과 질문이 이어져 미즈노 교수는 내심 놀라는 눈치였다.
최규하 전 대통령과 대구중학교에 관한 이야기는 1927년 진주 태생으로 1944년 일본으로 귀환하기까지 대구에서 유소년기를 보낸 고바야시 마사루(小林勝)라는 작가가 쓴 '일본인 중학교'(1957)라는 단편소설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이 소설에서 최규하 전 대통령은 '우메하라 겐타'라는 이름을 가진 동경고등사범학교를 갓 졸업한 신임 영어 선생님으로, 세련된 외모와 온화한 인품을 지녀 학생들 사이에선 선망의 대상이 될 만큼 인상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그러나 학생들 사이에서 그가 조선인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학생들의 태도는 180도로 달라지고 노골적으로 그를 조롱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를 계기로 우메하라 겐타는 일본인 중학교를 사직하고 만주로 가 버리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고바야시 마사루는 이 소설의 소재가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지금의 대구중학교는 해방 전에는 일본인 중학교였다.
최규하 전 대통령과 대구중학교에 관한 내용은 연구논문으로도 집필되고 있지만, 최규하 전 대통령이 생전에 직접 언급한 기록은 전혀 없다. 다만 최규하 전 대통령의 연보를 살펴보면 1941년 2월에 동경고등사범학교를 졸업하고 3월에 만주로 건너간 것으로 되어 있는데, 실제로는 1941년 2월 졸업 이후 한 학기 동안은 대구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고 볼 수 있다. 대구중학교 사직 후 만주로 건너간 최규하 전 대통령은 국립대동학원(國立大同學院) 정치행정반에 들어가면서 정치인의 길을 걷게 된다. 학생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최규하 전 대통령이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멸시를 받지 않고 끝까지 교사로 지냈다면 그의 인생 진로는 과연 어떻게 변했을까?
최규하 전 대통령은 영어는 물론이고 일본인보다 더 일본어를 잘한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뛰어난 어학실력을 가진 우수한 인재이다 보니, 조선총독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동경고등사범학교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일본인 학교 교사로 부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역대 대통령 중 가장 짧은 기간 재임을 했고 그로 인해 그다지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비하인드 스토리는 개인적으로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대구의 근대사를 공부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이런 사실은 영영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박승주/대구하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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