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F. 케네디 전 미국대통령은 명연설가로도 유명하다. 그의 연설문 중엔 역사에 길이 남을 명문이 많다. 원고 없는 즉흥 연설도 크게 손보지 않고서도 출판이 가능할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 그러나 케네디가 애초부터 달변가였던 것은 아니었다. 정치 초년병 시절 그의 연설은 별 볼 일 없었다. 말을 더듬었고 말의 속도가 급했으며 성대가 약해 목이 잘 쉬었다.
케네디는 자신의 연설 능력 부족이 정치 성공의 걸림돌임을 직시했다. 전문가 도움을 받아 발성법을 익혔고 언어 구사 능력을 개선해 나갔다. 수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미국 대통령 선거에 나설 즈음 그는 명연설가로 변신해 있었다.
상대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인들의 연설 실력이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이승만, 김영삼 전 대통령처럼 심하게 어눌한 대통령도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도 말 잘하는 정치인이라 할 수 없다. 야당 대표 시절의 박 대통령은 긴 말보다 짧은 말로 강한 인상을 남겼고 정치적 재미도 봤다. 2006년 지방선거 격전지 판세를 바꾼 "대전은요?" 발언과 2007년 "참 나쁜 대통령" 발언이 대표적인 사례다.
어떨 때 그는 말 대신 표정과 눈빛으로 의사를 표현한다. 참모진의 보고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말없이 차갑게 쳐다보는데 마치 눈에서 레이저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다. 그 눈빛 앞에서는 절로 간담이 서늘하고 오금이 저린다고들 한다.
심기가 매우 불편할 때는 상대를 아예 외면하기도 한다. 2013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때 그는 아베 일본 총리를 쳐다보지 않았다. 여당과의 불화가 한창인 요즘 광주 U대회 개막식에서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고 한다.
역설적으로 박 대통령은 길게 말할수록 재미를 못 보곤 한다. 언론에 노출된 그의 즉석 발언들을 보면 문장이 길고 수식어와 지시대명사가 많은 데다 문장 흐름과 관계없는 구절들이 불쑥불쑥 끼어들어 맥락 파악을 어렵게 만든다.
문제는 박 대통령의 '긴말'들이 '불통'과 부정적 이미지를 더 심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오죽했으면 '박근혜 번역기'라는 풍자 콘텐츠가 SNS 등에서 나돌겠는가. 대중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리더십을 확보해야 하는 현대 정치세계에서 언변 부족은 상당한 핸디캡이 아닐 수 없다. 또한 국격을 위해서도 대통령의 연설 솜씨는 필수적인 것이다. 케네디로부터 배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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