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키 작고, 머리 크고 배 나왔다. 그럼 나 '루저' 냐

편견에 우는 대한민국…어른·아이 없이 대중매체까지 신체적 핸디캡 웃음거리로

'편견에 우는 대한민국'. 건강하지 못한 주제다. 그만큼 우리나라가 정신적으로 병들어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우성 유전자(키 크고, 머리숱 많고, 날씬하고, 머리도 작음)를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은 축복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를 무기로 열성 유전자(키 작고 대머리에 뚱뚱하고 대두)를 비하해서는 안된다. 잘못된 편견 중에서도 가장 유치한 것이 신체적 핸디캡으로 놀리는 것이다. 신체적 핸디캡은 우열의 구분이 아니라 차이일 뿐이다. 이번 주 주말판은 대머리와 대두, 숏다리와 배불뚝이 등 신체에 관련된 편견으로 우는 사람들의 아픔을 들여다보고, 이를 타파하기 위한 노력을 모색해 본다.

권성훈 기자 cdrom@msnet.co.kr

◇키 작고, 머리 크고 배 나왔다. 그럼 나 '루저' 냐

대한민국 4대 신체적 핸디캡. 1번 대머리, 2번 숏다리(작은 키), 3번 배불뚝이, 4번 대두(큰 머리). 어떤 자리에 가도 놀림감의 대상이 된다. 심지어는 요즘 초'중'고 학생들 사이에서도 이마가 넓거나, 키가 작거나, 뚱뚱한 아이들은 '대머리 독수리'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멧돼지' 등으로 불리며 조롱거리가 된다. 어른들의 편견이 아이들에게 옮겨간 셈이다. TV 등 대중매체에서 신체적 핸디캡을 가진 이들을 희화화하다 보니, 이를 본 아이들조차 어릴 때부터 신체의 차이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살아가게 된다.

이 얼마나 안타까운 편견인가. 사람에 대한 평가를 타고난 신체를 가지고 한다면, 당하는 사람은 얼마나 억울하고 분통 터질 일인가. 이런 편견 속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비뚤어진 사고는 더 큰 사회적 문제를 낳게 된다. 머리 작고, 키 큰 것을 자랑삼아 거들먹거리는 우월적 유전자 인간들이 신체적 핸디캡을 가진 이들을 조롱하는 사회라면 대한민국은 희망을 잃어버린 사회가 될 것이다.

◆4대 핸디캡 중 3가지를 가진 설움

40대 후반의 한 직장인은 대한민국 4대 핸디캡 중 대머리만 빼고 나머지를 한몸에 지니고 있다. 회사에선 매력 없는 남자로 낙인이 찍혔다. 키는 원래 작았고, 체형 때문에 아랫배와 윗배 모두 불룩 튀어나왔다. 어릴 적에는 대두라서 커서 장군이 될 것이라고 칭찬도 받았지만, 지금은 '대갈 장군'이라는 놀림만 받을 뿐이다. 회식 자리에서도 신체적 핸디캡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늘 안줏거리가 된다. 때론 너무 그러지 말라고 항변도 해보지만 자신만 초라해질 뿐이다.

그의 외침은 이렇다. "참 답답합니다. 생산적이고 좋은 이야기들이 많은데, 왜 타고난 신체를 갖고 놀립니까. 외모 지상주의를 부추기는 매스미디어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키 크면 '승자'(Winner), 키 작으면 '패자'(Loser). 이 얼마나 사회를 병들게 하는 편견입니다. '아무리 놀려봐라, 난 괜찮다'고 생각하다가도 거울을 보면서 숏다리의 자신이 싫어지기도 합니다. 때론 부모를 원망할 때도 있죠. 다 부질없는 일인데, 우리 사회의 편견은 더 커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대머리는 그 자체가 비하이자 조롱

TV드라마까지 탈모에 대한 편견을 부추기고 있다. MBC '아현동 마님'에서는 탈모 남성에 대해 딸이 투덜거리자, 이를 본 어머니가 "그러길래 누가 대머리를 만나래"라고 말했다. '아직도 결혼하고 싶은 여자'에서는 여성이 소개팅 남이 대머리라는 이유로 딱지를 놓는 장면도 나온다.

2012년 한 취업사이트의 조사에 따르면, 여성의 경우 총 응답자 233명 중 77명(33%)이 1분 이내에 남성에 대한 호감도를 판단했는데, 비호감을 낳는 요인은 74명(31.8%)이 '적은 머리숱'이라고 답했다. 또 다른 결혼정보 회사의 조사에선 여성의 경우 만나기 꺼려지는 남성의 조건으로 '탈모'를 꼽은 여성이 53%나 됐다.

탈모 업계는 이런 사회적 편견에 편승해 대머리를 조롱하는 듯한 유머를 확대재생산 하는 측면도 있다. 탈모 관련 업계의 최근 10여 년간 매출이 조 단위까지 급성장했고, 이제는 탈모 산업이 됐다.

◆신체적 핸디캡으로 불이익을 받는 사회

면접을 볼 때도, 외모에서 풍기는 인상이 중요하다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다. 소개팅이나 미팅에서도 상대에 대한 첫인상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는 그 사람을 평가하는 빙산의 일각이다. 회사의 면접 평가자나 멋진 이성을 만나고자 하는 청춘들도 내면에 어떤 성품을 갖고 있는지와 어떤 능력과 재능을 소유했는지가 궁극적으로는 더 소중한 줄 알면서도 일단 첫 외모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

한 개인 의료기관에서 탈모증이 있는 3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탈모 때문에 불이익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대답한 이들이 87%(261명)에 달했다. 불이익의 유형은 취업이나 재취업에서 불이익을 경험 42%, 이성교제 및 결혼에 문제가 생겼던 경우가 41%로 높았다. 2012년 5월 대한피부과학회의 조사에 따르면 탈모를 겪고 있는 사람들의 63.3은 사람을 만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체적 핸디캡 때문에 적어도 사회적 불이익을 받지 않는 건강한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영남대 체육학과 유호상 교수는 "신체는 겉으로 보이는 한 사람의 표상일 뿐"이라며 "대머리나 숏다리 등은 보다 깊은 인간관계 속으로 들어가면 오히려 더 큰 호감을 주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반박했다.

권성훈 기자 cdro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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