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제국을 개척한 칭기즈칸이 사실은 일본인이었다!' '구약성경 속의 유대민족은 사실 일본민족을 지칭한 것이었다!' 2015년 지금 시점에서 이 황당무계한 가설을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가 열정적으로 수용되던 시대가 일본에 있었다.
1920년대 초반 일본에서는 중국 대륙으로의 모험적 여행을 일깨우는 시, 소설의 등장과 더불어 비운의 역사적 영웅, 요시츠네에 대한 신화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신화의 내용은 서른한 살 나이로 자결한 요시츠네가 사실은 죽지 않고, 구름을 타고 중국으로 건너가서 칭기즈칸으로 이름을 바꾼 후, 몽골제국을 건설했다는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역사책에 대한 일본 대중의 반향이 엄청나서 출판 후 재판을 10번이나 찍을 정도였다.
왜 이처럼 몰염치한 역사 날조가 1920년대 초 일본에서 일어났던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1차 세계대전 이후 불황에 시달리던 일본은 '경제난 타결'을 위한 방안을 간절하게 찾고 있었다. '칭기즈칸은 일본인이다'는 가설을 내세운 후, 일본은 마침내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키면서 중국 대륙 침략을 개시한다. 일본인 요시츠네가 중국인 칭기즈칸이라면 광활한 중국 대륙은 당연히 일본 땅이다. 일본으로서는 자기네 땅을 되찾는 일이었으므로 어떠한 죄책감을 느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1920년대 일본 내에 불어 닥친 역사관심 붐을 타고, 조선에서도 역사에 대한 관심이 다양하게 전개되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베스트셀러 중 하나였던 이광수의 역사소설 '마의태자'(1926~1927)는 이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발표된 소설이다. 신라 마지막 왕자 마의태자의 비극적 삶을 통해 후삼국시대의 혼란을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의외로 소설 분량에서 볼 때 주인공 마의태자에 집중적으로 할당되는 부분은 그다지 많지 않다. 소설의 절반 이상이 궁예의 삶과 위업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작가 이광수의 시선은 마의태자보다 궁예의 영웅적 삶에 더 강하게 닿아 있었던 것이다. 궁예는 고구려의 재건을 통해 대제국을 건설하려는 웅지를 가진 인물이 아니었던가.
작가적 정직성 때문인지 시대적 한계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광수는 궁예를 칭기즈칸으로 바꾸는 파렴치하면서도 대범한 행동까지는 하지 못했다. 다만 대제국 건설의 웅지를 지닌 궁예의 패기를 독자들에게 단편적으로나마 전달하고는 물러났다. 조선민족의 결함을 지적하며 '민족개조'를 외쳤던 이광수였다. 그러나 그의 또 다른 마음 한편에는 조선민족의 우월성을 역사 속에서 발견하려던 이율배반적 열망 또한 있었던 것이다.
일본의 역사 왜곡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 역사가 만드는 환상은 참으로 달콤한 모양이다. 누구라도 그 환상에 정신을 맡기는 순간, 여간해서는 빠져나오지를 못하니 말이다. 정치적, 경제적 이득 같은 지엽적인 문제에 따라 역사가 재구성되는 순간, 역사는 힘을 잃는다. 역사에서 미래를 향한 새로운 길을 발견할 수 있는 민족은 '사실'을 용감하게 직면하는 민족이 아닐까.
정혜영 일본 게이오대 방문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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