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키 작은게…' 죄인가요, '배 나오면…' 게으른가요

편견에 우는 대한민국…숏다리와 똥배의 비애

흔히 세상에는 세 가지 자본이 있다고 한다. 경제 자본, 문화 자본, 사회 자본이다. 영국의 사회학자 캐서린 하킴은 거기에 한 가지 자본을 추가한다. 바로 매력 자본이다. 그는 자신의 책에서 매력 자본을 "아름다운 용모와 성적 매력, 자기 표현 기술과 사회적 기술이 합쳐진 애매하지만 정말 중요한 자본"이라 정의했다.

매스미디어의 발달은 매력 자본 중 아름다운 용모라는 요소의 가치를 비정상적으로 높였다. 남다른 외모를 뽐내는 연예인, 그런 연예인에게 '우월한 유전자'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데 주저함이 없는 사회. 자연스레 시원시원한 이목구비, 큰 키, 군더더기 없는 몸매는 '워너비'가 됐다.

◆모든 악의 근원, 살?

직장인 A(30) 씨는 자신의 배를 바라보는 주위 시선이 부담스럽다. 172㎝ 키에 몸무게 74㎏. 지난해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체중이 5㎏ 불었다. 배도 불룩해졌다. 그는 오래간만에 만난 사람들이 "왜 이렇게 아저씨가 되었느냐? 관리 안 하느냐? 뱃살 좀 어떻게 해봐라"라고 하면 여간 짜증이 나는 게 아니다. TV에서 뚱뚱한 연예인이 땀 닦는 장면이 나오면 "저렇게 돼지처럼 살찌니깐 육수가 줄줄 흐르지"라는 모친의 말에 괜스레 움찔거린다. A씨는 선천적으로 땀을 많이 흘리는 체질이기 때문이다.

A씨는 "나도 관리가 필요하단 생각을 하지만 세상의 편견이 불편하다. 그런 한편으론 나 역시 그간 뚱뚱한 사람들에게 '빵떡'이라고 놀렸던 게 미안해진다"고 했다.

한국사회에 비만이 나태함으로 인한 질병이라는 편견이 뿌리깊게 자리 잡았다. 이 가혹한 편견은 남성보다는 여성, 나이 든 사람보다는 젊은 사람에게 더욱 비수를 꽂는다. 뚱뚱함은 단지 체형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자기관리를 못 하는 사람으로 간주한다. 개그 프로그램을 봐도 뚱뚱함은 웃음거리가 된다. 마른 몸매를 가진 황혜영(32) 씨도 "뚱뚱하고 배 나온 사람을 나쁘게 보는 시선이 있어서 식후에 배 나와 보이지 않으려 배에 힘주고 다니게 된다. 심지어 '혹시 살쪘어?'라는 질문을 받으면 그날 음식을 입에 대지 않은 경우도 있다"고 말할 정도다.

그 밖에도 뚱뚱하고 배 나온 사람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이 있다. 초등학생 때 씨름선수였던 주태현(32) 씨는 "말랐지만 나보다 많이 먹는 친구와 식당에 가면 친구는 항상 공깃밥을 추가 주문한다. 그런데 주인이 꼭 추가 밥을 내 앞에 가져다 놓는다"며 "뚱뚱한 사람이 음식도 많이 먹을 거란 편견 역시 불쾌하다"고 했다. 대학에서 체육을 전공한 권모(32) 씨는 "잘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축구 등 단체운동을 할 때면 뚱뚱하다는 이유로 배제당할 뻔한 적이 종종 있다. 그런데 막상 함께 운동을 해보면 '뚱뚱한데도 잘 뛴다'고 놀란다"며 "뚱뚱하면 몸이 둔할 것이란 선입견이 싫다. 야구선수 이대호는 덩치가 크고 배도 나왔지만 유연성이 좋은 운동선수이지 않느냐"라고 불만을 털어놨다.

◆키 작다고 우습게 보는 풍토

어린이집 교사로 근무하는 백지연(31) 씨는 한 달 전 원생들이 하는 이야기에 충격을 받았다. 백 씨는 원생들에게 점심 지도를 하면서 "음식을 골고루 먹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라고 했더니 한 원생이 "선생님처럼 돼요"라고 답해서다. 백 씨의 키는 146㎝. 백 씨는 조금이라도 키가 커 보이려 짧은 치마를 입고 높은 구두를 신는다. 성숙한 느낌을 주고자 아이라인도 짙게 그린다. 하지만 길에서 모르는 이에게 반말을 듣거나 노인들에게 "어린 학생이 꼴이 그게 뭐냐"라는 꾸지람을 듣는 경우가 잦다.

백 씨는 "사춘기 때는 키 큰 친구들이 내 키가 작다고 얕잡아 본 적이 많다"며 "키 큰 사람이 있으면 작은 사람도 있기 마련인데 왜 다들 키 타령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국민의 키에 대한 선호도는 편향적이다. 큰 키가 좋다는 생각에 부모들은 자녀가 4, 5세가 되면 성장판 검사를 받게 하고, 키만 커진다면 무엇이든 할 기세로 성장에 좋은 것은 다 사 먹이고, 키 크는 운동을 시킨다. 성장호르몬 주사는 '키 크는 주사'가 아니라 호르몬 결핍증이나 터너 증후군 등의 질환이 있을 때 처방하는 치료제이지만 부모의 성화에 이를 맞는 아이들도 적지 않다.

2013년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성장호르몬제의 하나인 소마트로핀 처방은 2011년 1만4천115건, 2012년 2만1천381건, 2013년 상반기 조사에서 1만2천525건을 기록했다. 2013년 처방 건수가 2011년과 비교했을 때 2배 정도 늘어났다. 처방 인원 역시 2011년 2천987명에서 2013년 상반기에만 3천927명으로 급증했다.

김흥식 동산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방학이면 성장호르몬 처방을 받으러 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중에 키가 작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왕따 당한 아이도 있었다"며 "숲에는 큰 나무와 작은 나무가 조화롭게 자라듯, 병리적인 이유가 아니라면 굳이 키 때문에 치료할 필요는 없다. 우리 사회가 키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키가 작은 사람도 스스로 자존감을 높이는 게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홍준표 기자 agape1107@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