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먹방, 쿡방 전성시대다. 음식 먹는 방송을 지칭하는 신조어 '먹방'과 음식 만드는 방송인 '쿡방'은 인터넷을 통해 퍼지기 시작했다. 인터넷 방송 진행자가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거나 요리 과정을 왜곡해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관음 취향을 자극하며 일정 부분 성공했다. 이를 케이블 TV와 종편이 수용했고 지상파 방송사도 뒤늦게 합류했다. 인터넷을 벗어난 먹방과 쿡방은 보편성을 획득한 듯 활개쳤고 방송 소비자들의 관심도 끌었다.
일단 재미있다. 먹는다는 행위의 즐거움과 요리 만드는 과정은 굳이 내가 먹지 않아도 만족을 준다. 음식을 만들고 먹는 단순한 내용이지만 이런 방송이 성공할 수 있는 이유다. 여기에 방송 특유의 대결구도와 정보, 비판적 시각까지 담았으니 연착륙할 만하다. 문화현상으로 진화할지는 지켜봐야겠지만 분명 유행은 만들어냈다.
음식이 유행에서 문화현상으로 이어진 모습은 1980년대 중반 이후 등장한다. 1981년 있었던 '국풍81'을 통해 충무김밥 같은 지역 음식이 소개되긴 했지만 대중들이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음식을 소비한 것은 88서울올림픽이 계기다. 골목마다 돼지갈비집이 등장하고 프랜차이즈 치킨집이 문을 열었다. 광고와 미디어는 소비의 시대를 예찬했고 대중은 치킨이나 피자를 배달시키며 중산층인 된 환상에 빠졌다.
대개 프랜차이즈 유행이 지나면 지역 음식이 경계를 넘어 팔리게 된다. 이마저 소진되면 세계 음식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여기에 스토리와 역사가 개입하면 유행과 문화가 혼재한다. 눈치 빠른 미디어는 걸맞은 프로그램을 만든다. 개인은 미디어를 통해 따라하고 싶은 욕망을 학습한다. 개인의 욕망은 인터넷과 SNS를 통해 확장되고 대중이 소비하게 된다. 이른바 요즘 유행의 탄생 규칙이다.
유행은 항상 새로운 것을 원한다. 복고도 새로움이 추가될 때 유행 편에 설 수 있다. 새로움을 좋아하는 청년 세대는 유행에 민감하다. 먹방, 쿡방의 유행에도 예외 없이 청년 세대의 소비가 적극적이다. 미디어가 만들어 낸 유행 코드를 청년 세대가 학습하고 이를 다시 재생산하는 과정에서 문화현상도 되고 산업도 된다.
그런데 먹방과 쿡방 유행에는 이전까지의 음식 프로그램과 다른 코드가 숨어 있다. 맛집 탐방이 대부분이던 기존의 방송은 음식과 여행이 결합된 형태였다. 발품 팔아 찾아낸 장소에서 맛보는 음식은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성취감까지 줬다. 혼자더라도 맛집에서 볼 수 있는 군상을 통해 동질감을 가질 수 있었다. 먹방과 쿡방은 동질감을 느낄 대상이 필요 없다. TV나 모니터 앞에서 즐기고 혼자 따라 먹어보는 것으로 체험은 끝난다. 유행 주기는 짧아지고 새로운 자극이 요구된다.
1인 가구의 증가는 먹방과 쿡방 유행의 배경이기도 하다. 꼭 1인 가구가 아니더라도 가족이 함께 식사하는 일이 드문 현대사회에서 먹고 만드는 것을 보는 일은 함께 식사하는 공동체의 간접 체험이다. 먹을 것이 넘쳐나는데 먹을 것에 집착하는 비정상적인 현상은 추억하고 공유할 사람이 없는 세상의 반영이다.
미디어가 먹방과 쿡방을 제비가 물고 온 봄소식으로 여겨 반갑게 덤비는 모습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간접광고가 늘어날 거란 우려도 있지만 결국 트렌드로 자리할 것이다. 오히려 먹방과 쿡방을 보면서 함께 밥 먹는 일이 그리워 갈구한다면 비정상이다. 인구 재배치와 공동체 해체가 먹는다는 기본적인 행위마저 교육이 필요하게 만들었다면 비정상이다. 그러니 다음 유행 코드는 누군가와 함께 밥 먹는 모습이 아닐까. 이런 유행이라면 문화현상으로 이어져도 괜찮겠다.
권오성/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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