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재미있는 국어 문법을 위하여

중학교 3학년인 딸이 국어 기말고사 시험지를 가지고 와서 자기가 틀린 문제에 대해서 설명을 좀 해 달라고 했다. 한 문단 안에 있는 문법 요소를 모두 찾는 좀 가혹한 형태의 문제였는데, 우리 아이가 선택한 답과 정답의 차이는 미래 시제가 있느냐 없느냐에서 갈렸다. 우리 아이의 말은 '그 아이에게 죄로 가지 않을 만큼 한다고 했다.'에서 미래 시제가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선생님이 내 주신 학습지에도 분명히 미래 시제는 '사건시(사건이 일어난 시점)가 발화시(말하는 시점)보다 이후'인 시제라고 하였기 때문에 '죄로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건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문제는 두 가지 이유에서 답을 확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문제이다. 첫 번째는 관형사형 어미 '-ㄹ'을 사용한다고 해서 모두 미래 시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간과했다는 점이다. 다음 예문을 한 번 보자.

1-1. 나는 최선을 다할 뿐이다.

1-2. 밥은 따뜻할 때 먹어야 한다.

이 예문을 보면 어미 '-ㄹ'은 미래 시제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뒷말을 꾸며주는 형태로 만들어주는 역할만 할 뿐이다. 그래서 '-ㄹ'의 자리에 과거나 현재 시제를 표현하는 어미를 넣어서 말을 만들어 보면 '다한 뿐', '다하는 뿐', '따뜻한 때'와 같이 매우 어색한 형태가 된다. '죄로 가지 않을 만큼'도 이런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미래 시제를 나타낸다고 보기는 어렵다.

억지로 우겨서 '죄로 가지 않을'을 미래의 의미로 해석한다고 해도 문제는 생긴다. '죄로 가지 않는다'는 일을 시작하는 시점을 기준으로 보면 미래가 될 수 있지만, 과거 시제를 나타내는 '했다'와 같이 있기 때문에 말을 하는 지금 시점에서는 과거가 된다. 이것은 기준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시제가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문법적 용어로 '상대적 시제'라고 한다. 선생님이 내준 학습지에 있는 설명은 기준점을 현재로 고정시켜 놓은 '절대적 시제'를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학교에서 배운 대로라면 미래 시제가 없다고 보는 것이 좀 더 정확한 해석이 될 수 있다.

시험 전날에는 과거 시제를 나타내는 어미에 대해 물었었는데, 사실 이 내용에 대해서도 시험에 나왔다면 나는 딸에게 엄청난 원망을 들었을 것이다. 학습지의 설명에 따르면 동사에는 어미 '-은/-ㄴ'을 사용하고, 형용사나 서술격 조사에는 '-던'을 사용해서 과거 시제를 표현한다고 설명을 해 놓았다. 이 설명대로라면 동사 뒤에는 '-던'을 사용할 수 없는 것처럼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먹던 음식', '좀 놀던 언니'와 같이 아무런 제약 없이 사용된다. 그렇지만 의미에는 모국어 화자만 알 수 있는 미세한 차이가 있다. 다음 예들을 한 번 비교해 보자.

2-1. 어제 먹은 음식/늘 먹은 음식*

2-2. 어제 먹던 음식/늘 먹던 음식

2-1은 과거에 확실하게 완료된 것이다. 그래서 습관을 나타내는 '늘'이라는 부사어와는 같이 쓰이지를 못한다. 이에 비해 2-2는 동작이 완료되지 못했거나, 완료 여부와 상관없이 특정 시점의 상황을 표현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하던 대로 해라'와 같이 과거 시제의 표현과는 상관없이 습관적인 일이라는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미세한 차이를 탐구해 보면 우리말이 가진 풍부한 표현력을 알 수 있고, 토씨 하나에 의미가 크게 달라지는 논리를 경험할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버리고 외국인들에게 문법을 가르치듯 '-ㄹ'은 미래, '-은'은 과거, 무조건 외워라 하니 국어 문법이 재미가 없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능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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