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고양이의 보은

안건우
안건우

시원한 맥주가 생각나는 계절입니다. 그래서인지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술자리는 언제나 행복하고 즐겁기 마련입니다. 때때로 공연을 함께 준비하던 배우들과 연습 때 못 나눈 이야기가 있거나, 마음 맞는 친구와 오랜만에 약속이 생기거나 하면 어느새 즐거운 술상 앞에 앉게 됩니다. 많은 단골집 가운데 유독 자주 찾는 곳이 있습니다.

선배가 운영하는 조그만 실내포차입니다. 편한 마음으로 술잔을 기울일 수 있는 곳입니다. 언제나 그곳에 가면 반갑게 맞아주는 선배가 있고, 가끔 좋아하는 올리브 안주가 덤으로 나오면 아이처럼 기분 좋아지는 데다, 눈으로 인사를 나눌 정도의 낯이 익은 친절한 손님들도 있기에 더 편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손님들 중 성악가나 꽤 유명한 가수도 자주 오는데, 재수가 좋은 날엔 바로 눈앞에서 작은 콘서트가 펼쳐지는 짜릿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에 가면 늘 먼저 찾게 되는 것이 있는데, 이곳을 운영하는 선배가 키우는 두 마리의 고양이, 장군이와 멍군이입니다. 조심성 많은 두 녀석은 내가 다가가면 빠른 걸음으로 피해 다니기 바쁩니다. 저는 못내 아쉬워 이름을 불러보고 눈이라도 마주치려 늘 애를 먹습니다.

저와 두 고양이와의 인연은 조금 남다릅니다. 몇 해 전입니다. 매년 봄이면 열리는 대구연극제에서 '오빠가 돌아왔다'라는 제목의 연극에 연출로 참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엉뚱하고 '삼류'스럽지만 속정 깊은 가족의 갈등과 화해가 주제였습니다. 좌충우돌 가족의 화해를 앙증맞게도 고양이가 등장하여 돕는다는 내용입니다. 난감했습니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중요한 모티브가 고양이이기에 당황스러웠습니다. 무대에 실제로 고양이를 등장시킬 수는 없었기 때문에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러던 중 선배의 가게에 들렀다가 두 녀석을 보게 됐고, 출연시키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물론 두 고양이가 직접 출연하는 것이 아니라 '울음소리'를 녹음한 효과음으로 출연하는 것이었지만 말입니다. 장군이와 멍군이의 사진 및 이름을 다른 출연배우들과 함께 공연 팸플릿에도 올렸습니다.

지금도 선배는 가끔 "장군, 멍군이! 너희 데뷔시켜준 분이다. 잘해줘라"며 농담을 합니다. 도망 다니기 바빴던 녀석들이 그 말을 들으면 마치 알아들은 듯 꼬리를 한껏 세워 자리를 잡고, 윙크하듯 찡긋 눈을 마주쳤다가 다시 수줍게 숨을 곳을 찾습니다. 그 모습에 "날 알아보는구나. 이놈들." 이렇게 혼자 낄낄거리고 있으면 선배가 어김없이 한마디합니다. "많이 취했구나." 고양이 덕분에 술자리에서는 웃음이 터지고 즐거운 이야기가 계속 이어집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동네 어귀에서부터 길고양이들과 마주치게 됩니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말이라도 걸라치면 뭐가 그리 무서운지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가서 먼발치서 멀뚱멀뚱 쳐다봅니다.

"야옹아! 뭐가 그렇게 무섭고 조심스럽니? 혹시 아니? 너희를 연극무대에 데뷔시켜줄지?"

실없는 농담을 건네면 고양이들은 '실없는 소리 다 듣겠네' 하는 표정과 함께 종종걸음으로 사라집니다.

안건우/극단 시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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