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생활은 사람다움을 느끼는 즐거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외국 여행을 즐기거나 넓은 아파트에 고급 오디오와 미술품을 장만하는 문명생활과는 다른 정신활동이다.
바람직한 정신활동 가운데 하나는 같은 취미생활을 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닐까. 그 대화란 한 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나서 느낌을 주고받는 일이다. 돈 밝히는 경쟁이 심하고, 오로지 정치 사안에만 집중하여 거친 말을 내뱉는 요즘 세태에서 그럴듯한 대화 모임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나는 몇 년 전 오붓한 영화 모임을 만났다. 용지네거리에 있는 '가락 스튜디오'는 작은 무대를 갖춘 음악 놀이터다. 평소에는 기타를 비롯한 여러 악기에 대한 강습이 있고 가끔은 소규모 그룹 연주회를 한다. 여기서 매달 둘째와 넷째 수요일 저녁에는 영화 보는 모임이 있다.
흥행작에만 익숙한 나로서는 '의미 있는' 영화를 보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사 없는 긴 흑백 영화, 난해한 유럽 영화, 낯선 중동이나 남미의 영화를 볼 때는 지루해 졸거나 하품만 하다 끝난 경우도 있었다.
꿈보다 해몽이라 했던가. 영화가 끝나면 탁자를 펼치고 빙 둘러앉아 차례로 돌아가며 영화를 본 느낌을 말한다. 이 해몽 시간이 값지다. 작품은 대구에서 쟁쟁한 인문학자들과 전문가 못지않게 영화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주부님들이 고른다. 영화를 추천한 분은 그 영화의 감상을 돕기 위해 감독과 배우들의 이력에 대해 철저히 공부해 온다.
20세기 초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라는 대작을 지어 20세기 지성사에서 손꼽히는 업적을 남긴 '아르놀트 하우저'는 이런 말을 했다. "20세기 후반부터는 영화가 가장 위대한 종합예술이 되리라."
가락 스튜디오에서 보는 '의미 있는' 영화는 대체로 시대의 정치와 경제 배경을 알지 못하고는 이해하기 어렵다. 전문 인문학자의 도움으로 영화 뒤에 깔린 사회 배경을 알고 나면 영화를 새삼스레 되새김질할 수 있다. 배경 지식은 인문학자에 미치지 못하지만 주 멤버인 주부 특유의 감성적 감상평은 때로는 전문가보다 더 날카롭다.
술에 안주를 곁들이며 모든 참가자들이 차례로 느낌을 이야기하는 시간은 소박하지만 마음을 풍성하게 한다. 영화가 보여준 다양한 사람의 고통과 고뇌에 대해 더 따뜻한 눈길을 보낼 수 있고, 소외당한 사람들의 처지를 사회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른다. 우리 사회의 일반 대화에서 흔히 그렇듯 편견과 정치 과잉에서 나오는 메마른 말은 나올 수 없다.
진정한 문화생활이란 돈이 필요한 놀음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대화라 생각한다. 이게 사람다움의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생각하는 치과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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