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국회 마비의 주범이라며 국회선진화법을 향해 칼을 빼들었다. 이 법이 있는 한 아무 일도 할 수 없다고 위에서 아래까지 한목소리다.
그런데 말이다. 국회선진화법은 새누리당에서 먼저 벌인 일이다. 지금 국회선진화법을 갈아치워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는 인사들 가운데 다수는 2012년 5월 2일 18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이 법을 통과시킨 주역들이라는 게 걸린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13일 취임 1주년 기념회견에서 선진화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모습은 그나마 나았다. 김 대표는 이 법이 추진될 당시부터 문제점이 있다며 반대를 해 온 인물이어서다. 이 법이 추진되던 때에도 문제점을 지적하며 김 대표 같이 반대한 이들은 있었다. 그러나 유력 대선 후보로 '미래 권력'이라고 불리던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이 이 법에 힘을 보태자 반대론은 파묻혔다. 그래서 비판론자들은 박 대통령도 이 법을 둘러싼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주장한다.
김 대표는 이 법을 망국법이라고까지 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 선진화법을 주도적으로 만들어낸 새누리당의 대표직을 갖고 있다. 새누리당이 한 일에서 자유롭지 못한 위치다. 자기들이 무슨 대단한 일을 한다며 선전하고 거창하게 일을 벌여 놓은 기억이 생생한데, 3년도 채 지나지 않아 그 당의 대표라는 사람이 공개석상에서 앞뒤 다 잘라버리고 이 법 때문에 나라 망하게 생겼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리 좋게 보려고 해도 설득력이 약하다.
선진화법이 통과되던 때로 되돌아가 보자. 19대 총선을 앞둔 정국은 어느 당이 다수당이 될지 모를 정도로 혼미했다. 총선을 이겨야 대선에서도 유리한데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니 여야는 다투어 무리한 공약들을 쏟아냈다. 한나라당도 당의 간판까지 바꾸고 빨간색을 당의 상징으로 바꾸는 초강수를 두었다. 국회선진화법은 이런 가운데 나온 새누리당의 대표적인 총선 공약이었다.
법 통과를 주도했던 한 인사는 "이 법을 추진할 때 이미 국회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하나씩 주고받아야 할 것이라는 전망을 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일단 이겨놓고 보자는 생각이 걱정을 앞선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출발한다.
새누리당은 19대 총선에서 다수당이 되었고 연말에 치러진 대선에서도 승리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좋았다. 박근혜정부가 들어서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정부조직법 개정안부터 막혔다. 무려 5개월이 넘게 걸렸다. 국회에서는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었다. 160석이나 되는 압도적 다수 의석도 무용지물이었다. 무슨 일을 하려면 과반도 아닌 재적의원 '5분의 3 이상의 찬성'이 필요했다. 무려 180석이 필요했다. 새누리당의 힘과 능력으로는 도저히 만들 수 없는 숫자였다.
시간이 갈수록 새누리당 사람들의 생각은 바뀌어갔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달라진 것이다. '날치기의 추억'도 떠올렸을 것이다.
솔직히 우리 정치 현실에서 국회선진화법은 맞지 않다는 이야기가 많다. '모 아니면 도'밖에 모르는 극단주의자라야 득세를 하는 정치판이나 그런 정치인들보다 더 극단적인 유권자들의 정치 성향에 비춰보면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럴듯한 이유가 많고 명분이 있어도 자초지종 배경 설명이 먼저다. 유감 표시나 사과라도 먼저 하고 바꾸든지 없애든지 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도 흔쾌히 용납도 하고 동의도 할 수 있다.
한편 선진화법 공방전에서 키를 쥔 쪽은 야당이다. 야당이 다수당이 되기를 포기하거나 어렵다고 판단한다면 선진화법은 20대 국회도 볼모로 삼을 것이 뻔하다. 지금 야당 돌아가는 사정을 보면 선진화법에 안주하려는 것 같다. 이런 야당이라면 해볼 만하다는 생각을 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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