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기 기증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3가지

①기증자 "팔아먹었냐" 친지 비난 ②수혜자 "취업 어려워" ③의료계 "의사 탓부터"

전문가들은 장기기증을 확대하려면 보호자와 의료진의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최동락 대구가톨릭대병원 장기이식센터장의 간 이식 수술 모습. 대구가톨릭대병원 제공
전문가들은 장기기증을 확대하려면 보호자와 의료진의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최동락 대구가톨릭대병원 장기이식센터장의 간 이식 수술 모습. 대구가톨릭대병원 제공

올 초 대구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 50대 초반의 남성이 실려왔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실수로 넘어지면서 머리를 크게 다친 것.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의식이 없는 상태였고, 며칠이 지나도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돌이킬 수 없는 뇌손상으로 뇌 활동이 불가능한 뇌사 상태에 빠진 것이다.

뇌사 추정자로 분류되자 병원 측은 한국장기기증원에 신고를 하고 장기이식 코디네이터가 가족들과 접촉했다. 미혼이었던 이 남성이 장기기증을 하려면 유족 중 선순위인 어머니의 동의가 필요한 상황. 동생을 비롯한 유족들은 고민 끝에 어머니를 설득해 장기기증에 동의했다. 마지막 순간, 이 남성은 심장과 신장, 각막을 기증해 4명에게 새로운 삶을 이어주고 떠났다.

소중한 신체 일부를 나누는 장기기증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다. 장기는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선 중증 질환 환자들이 새로운 생명을 얻고 삶을 이어나갈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구경북은 장기기증을 신체 훼손으로 여기는 보수적인 정서에다 장기기증에 대한 바른 인식이 부족, 다른 지역에 비해 장기기증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장기기증을 신체 훼손으로 오해

장기기증 활성화를 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신체 훼손'이라는 거부감이다. 지역 대학병원의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들은 "뇌사 추정자 가족들 대다수는 장기기증에 대해 아예 설명조차 듣지 않으려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의학적으로는 회복이 불가능한 '뇌사' 상태지만 유족들은 사망 사실 자체를 믿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계명대 동산병원에서 장기이식 코디네이터로 일하는 주신헌 간호사는 "뇌사 추정자 가족들에게 '장기기증에 대해 알고 있느냐'고 물으면 아예 손사래를 친다"고 했다.

"설명 자체를 들으려 하지 않아요. 살아날 수 있을 것 같은데 무슨 소리 하느냐는 거죠. 화를 내거나 욕설을 하면서 치료를 포기하라는 거냐며 멱살을 잡는 경우도 있어요."

뇌사 추정자의 장기기증에 가족의 동의는 절대적이다. 배우자와 직계존속, 형제자매 등 순위에 따른 직계 가족 1명의 동의가 없으면 장기기증은 이뤄질 수 없다. 뇌사 추정자가 생전에 장기기증을 약속했고, 유서까지 남겨도 가족이 동의하지 않으면 그뿐이다.

가족들이 결정을 미루는 사이에 장기기증 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있다. 이달 초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한 필리핀 남성이 그런 경우다. 외국인 근로자로 일하던 이 남성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졌다. 역시 한국에서 일을 하던 형이 기증 의사를 밝혔지만 정작 동의해줘야 할 보호자가 망설였고, 장기기증 시기를 놓쳐 기증이 무산되고 말았다.

까다로운 기증 절차와 장기기증에 대한 이해 부족 등으로 인해 뇌사 추정자가 발생해도 장기기증까지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장기기증원에 따르면 지난달 영남권역에 발생한 뇌사 추정자 37명 가운데 실제 장기기증으로 이어진 경우는 7명으로 18.9%에 그쳤다.

◆기증자, 수혜자 모두 감추기 급급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서 장기기증을 한 고교생 A군. 오토바이 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진 A군의 부모는 고심 끝에 아들의 장기를 기증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A군의 부모는 장기기증 기관 관계자들에게 "절대 직계 가족이 아니면 장기기증 사실을 알리지 말아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장기기증 사실을 알게 된 친지들의 비난이 두렵다는 게 이유였다.

장기기증 관련 전문가들은 "장기기증자의 가족들이 기증 사실을 숨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한다. 장기기증에 대한 일그러진 인식 때문에 장기기증에 동의한 가족과 다른 가족들 사이에 갈등을 빚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장기기증을 한 뇌사 추정자에 지원되는 의료비와 장제비조차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 지원금을 두고 '팔아먹었다'는 식으로 비난하는 친지나 주변 사람들의 시선 탓이다.

장기 이식으로 건강을 회복하고 왕성하게 활동하는 수혜자들도 감추기는 마찬가지다. 장기 이식인들에 대한 사회의 불편한 시선 때문이다. 장기 이식을 받았다는 사실 때문에 취업 등에 어려움을 겪거나 차별받는 사례도 있다.

지난해 11월 울산에서 열린 장기이식인체육대회는 이 같은 장기 이식에 대한 불편한 시선을 바꿀 수 있는 기회였다. 장기기증을 받은 지 1년 이상 된 이들이 참가하는 대회에서 이식인들은 기량을 겨루며 생명나눔의 의미를 되새겼다. 이 대회에서 메달을 차지한 선수들은 올해 아르헨티나에서 열리는 제20차 세계이식인경기대회에도 참가할 예정이다.

(사)생명잇기 조원현 이사장(계명대 동산병원 이식혈관외과 교수)은 "이식인들이 건강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장기기증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 알리는 역할을 한다"면서 "실제 세계이식인경기대회를 여는 국가들의 장기기증률이 15~20%가량 높아진다는 통계도 있다"고 말했다.

◆의료진과 지역 사회 머리 맞대야

전문가들은 장기기증을 늘리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으로 '의료인들에 대한 교육'을 꼽는다. 뇌사자가 발생하는 응급실이나 신경과, 신경외과 등 관련 진료과목의 의료진들이 관심을 가질수록 기증자가 늘어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정작 의료진들이 장기기증에 대해 달갑잖게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않다.

지역 의료계 한 관계자는 "장기기증에 대해 설명하면 보호자들이 '의사가 제대로 치료도 안 하고 장기기증을 하라고 말한다'고 화를 내는 경우가 있다"면서 "의료진이 미리 걱정을 하다 보니 장기기증에 대해 소극적이 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놨다.

장기기증을 하는 대구시내 대학병원들의 노력도 부족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서울이나 부산 등 장기기증자가 많은 도시들은 병원들이 앞장서서 홍보 캠페인을 펼치고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장기기증에 대한 부정적인 오해를 떨치기 위해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도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기부에 대한 내용과 함께 생명나눔에 대한 교육을 하되, 일회성 행사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것. 조원현 이사장은 "가족들이 반대하면 장기기증을 할 수 없는 현 제도를 고인의 뜻을 가장 존중하도록 고쳐야 한다"면서 "지방자치단체들도 지역에서 발생한 이식 환자는 지역사회가 책임지도록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장성현 기자 jacksoul@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