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공직을 시작해 뿌리를 내린 이승호 중앙토지수용위원회 상임위원은 대구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언론에 대구와 관련해 좋지 않은 기사가 나오면 며칠 동안 기분이 나쁘다. 내 인생의 중요한 18년을 대구에서 보냈기 때문에 대구가 잘못되면 내 인생 18년이 사라질 수 있다"고 말한다.
1970년대 중반 입시 부정 사태로 시험을 2번이나 쳐 경북고에 들어간 이 위원은 비록 태어난 곳은 울산이지만, 이전이나 지금이나 대구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하다. 지연과 학연에 매여 폐쇄성이 강한 대구의 특성을 오히려 장점으로 승화시켜 지역 발전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설파했다.
공직생활을 마무리한 뒤에는 반드시 대구로 다시 돌아와 공직 경험을 지역 발전에 오롯이 투신하겠다는 이 위원으로부터 공직 경험담과 대구 발전 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서울에서의 공직생활은 어떠했나.
▶처음엔 생활도 힘들었고, 설움도 많이 받았다. 일은 열심히 했지만, 제대로 챙겨주는 이가 없었다. 2004년 8월 서울에 올라와 곰팡이 핀 월 17만원짜리 월세방에서 자취했다. 큰딸이 대학 입시를 위해 서울에 와 하룻밤 자고 난 뒤 펑펑 울며 내려갔다.
대구시 사상 국장(부이사관)급이 서울에 올라와 근무한 것은 내가 최초였다. 직급 높은 지방 출신 공무원이 중앙부처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다. 국무총리실에서 2년 6개월 동안 열심히 일했지만, 승진을 안 시켜줘 떼를 쓰기도 했다. 겨우 이사관으로 승진한 뒤 건설교통부(국토해양부 전신)로 옮겨 광역교통기획관과 광역교통추진단장을 맡았다. 2008년 이명박정부 들어서 조직 개편을 하면서 내 자리가 없어졌다. 원래 공무원은 공모직 자리가 없어질 경우 최우선으로 다른 자리를 받거나, 당초 근무하던 부처로 자리를 옮기도록 돼 있다. 하지만, 국무총리실 조직의 30%가 줄어들면서 다시 돌아갈 수도 없어 국토해양부에 그대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국토부에서 국장 인사할 때마다 '굴러온 돌'이라는 수군거림을 들어야 했다.
-국토부에서 기억에 남는 업무는.
▶철도정책관으로 있으면서 대구도시철도 3호선 국비 지원이 원활히 이뤄지도록 한 것과 국내 철도의 속도를 높이는 시스템을 도입한 것 등이 기억에 남는다. 또 광역교통기획관 시절 경부고속도로에 평일 버스전용차로제를 도입한 것도 현재 긍정적 효과를 내고 있다.
-철도의 속도를 높이는 시스템이란.
▶2004년 KTX를 도입했지만 핵심 간선 노선에만 국한됐다. 다른 노선의 경우 최대 속도가 90~120㎞(새마을호)에 불과해 철도 이용률이 낮았다. 2011년 제2차 국가철도망계획을 세우면서 '철도의 생명은 속도'라는 개념을 도입, 전국을 1시간 30분 생활권으로 바꾸는 정책목표를 세웠다. 철도 주요 간선은 300㎞ 속도인 KTX로 하되 그 지선은 최소 150㎞에서 최대 200㎞로 맞췄다. 현재 철로가 일제강점기 때 건설돼 노후화됐기 때문에 디젤열차의 전철화, 하중을 높이는 방향으로의 노반 개량, 속도 높은 신열차 도입 등을 추진했다. 현재 이 계획이 실행에 옮겨지면서 효과를 보고 있다.
-평일 버스전용차로는 어디에 적용했나.
▶경부고속도로는 수도권에서 동탄 분당 용인 수원 기흥 신갈 등지 시민들이 모두 이용하기 때문에 늘 지'정체가 반복됐다. 특히 버스가 속도를 내지 못하기 때문에 대다수 시민들이 출퇴근 시간대 승용차를 끌고 나와 교통 체증이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토'일요일과 휴일에만 적용하던 버스전용차로제를 서울 한남대교~경기도 오산 구간에는 평일에도 운용하도록 바꿨다. 이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더라면 현재 서울에서 세종시까지 출퇴근 버스가 다니기 힘들었을 것이다.
-중앙토지수용위원회는 어떤 일을 하나.
▶정부나 산하 공기업, 광역자치단체 등이 공공사업을 할 때 토지나 건물의 편입 과정에서 소유주와의 보상 협의가 잘 되지 않아 수용 재기 신청을 해오면 준사법기관으로서 보상가를 결정한다. 감정평가사를 통해 땅이나 건물값 산정, 영업 보상, 잔여지 매입가 등을 결정하는데, 통상 최초 협의가보다 5% 범위 안에서 올라간다. 기초자치단체의 사업 수행 과정에서도 광역단체 지방토지수용위원회 결정에 불복해 이의신청을 할 경우 중앙토지수용위원회가 다시 협의를 벌인다.
-대구에서도 상당 기간 공직생활을 했는데, 보람 있었던 일은.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 관련 업무를 볼 때다. 대구도시철도 1호선을 건설할 때 기획계장을 맡아 자금 조달 계획을 담당했다. 교통 전문직이 타당성 조사부터 노선, 교통 수요 등을 맡고, 나는 국비 조달 계획 등 자금을 어떻게 충당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처음 건설비의 40%를 국비로 따왔고, 이후 60%까지 끌어올렸다. 부산은 지역 국회의원들이 처음부터 지하철 건설사업을 국책사업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국비 지원 비중이 우리보다 높았다. 대구지하철 국비 지원 차액 20%는 대구시 부채로 남았는데, 국토부 철도정책관을 할 때 이 부채를 정부가 몇 년간에 걸쳐 갚도록 힘을 쏟아 성과를 냈다.
문희갑 대구시장 시절 교통 체계 개선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1995년과 1996년에 걸쳐 대구시내 주요 간선도로에 버스전용차로를 처음 도입한 것에 보람을 느낀다. 처음 도로변에 새파란 선을 긋고 버스전용차로를 만들었으나 승용차 운전자 등이 이를 제대로 지키지 않아 '끼어들기' '불법주차' 등 차량을 단속하는 데 애를 먹었다.
1990년대 초반 주택계장을 하면서 분양가 승인을 한 것도 기억에 남는다. 옛 코오롱 부지에 건립된 아파트 분양가를 승인했는데, 대구시 최초로 평당 분양가가 300만원을 넘어 언론 등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대구 공직사회를 어떻게 보나.
▶과거에 비해 변화하고 있지만, 공무원들이 더 바뀌어야 한다. 공무원이 혁신의 주체 역할을 해야 한다. 공무원이 열심히 쫓아다니고, 열심히 일하면 시민들이 힘을 얻는다. 나서서 규제를 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자기 일에 온몸을 바쳐야 한다는 말이다. 국장, 과장들도 수시로 서울과 세종시를 왔다 갔다 해야 한다.
또 건축, 기업활동 등 인허가 민원과 관련해 법 규제만 따져 안 되는 쪽으로만 생각할 게 아니라 되는 방향으로 적극적인 행정을 펴야 한다. 중앙부처는 이미 민간에, 시장에 상당한 권한을 넘기고 지원 방식 위주로 고민한다. 지방자치단체는 아직 변화와 혁신이 더디다.
김병구 기자 k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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