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손님

불합리'비정상 판치는근현대사의 축소판?

극장가는 본격적인 여름방학 시즌을 앞두고 '암살' '베테랑' '협녀' 등 한국영화 빅3의 공개를 기다리고 있다. 한국영화 대작뿐만 아니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까지 다음 주부터 줄줄이 개봉을 하게 되는 상황이라 곧 박스오피스 순위에서 물러나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냥 지나치기에 안타까운 영화가 있다. 바로 판타지 호러 '손님'이다. 신예 김광태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했다. 영화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인 독일 동화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를 한국적 상황에 맞게 새롭게 다시 쓴다. 이 이야기는 한국 현대사와 잘 어우러져, 흥미로운 콘텐츠로 재가공되었다. 호러, 판타지, 미스터리, 가족 멜로, 코미디, 역사극의 복합장르로 이루어진 영화로, 이러한 복합성이 오히려 극의 긴장감을 떨어뜨린다는 단점이 지적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광복 70주년을 맞이한 지금, 한국현대사의 비극을 알레고리로 훌륭하게 그려내는 작품이다.

스토리텔링은 '피리 부는 사나이'의 진행을 그대로 가져왔다. 전쟁이 막 끝난 1953년 무렵, 떠돌이 악사가 폐병을 앓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우연히 깊은 산 속 마을로 찾아온다. 그곳은 심심찮게 쥐 떼가 출몰하여 마을 사람들을 곤경에 빠뜨린다. 피리 부는 악사는 쥐 떼를 쫓아주면 소 값을 받기로 하지만, 촌장과 마을사람들은 오히려 그를 빨갱이로 몬다. 아들까지 잃은 악사에게 남은 것은 잔인한 복수뿐이다.

영화는 수많은 디테일을 통해 우리 모두가 행했거나 혹은 눈감음으로써 우리 곁에 남기고만 불합리와 비정상을 꼬집는다. 영화의 주제는 '약속'이고, 이는 역사적으로 약속을 이행하지 않은 권력자들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는, 정의롭지 못한 우리의 현실을 보게 한다. 마을은 한국 근현대사의 축소판이다. 역사라는 시간성이 촌마을이라는 공간성 안에 시각적으로 압축되어 그려진다.

호남에서 태어났으나 아이 이름은 '영남이'이다. 경상도 사투리를 근엄하게 쓰는 촌장은 충청도, 강원도, 경기도 사투리를 쓰는 다양한 사람들을 끌고 다닌다. 지역 갈등과 지역 차별의 뿌리가 감지된다. 이들이 정착한 마을은 원래 이들의 것이 아니어서, 한센병 환자들과 피비린내 나는 마찰이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이념 갈등이지만 실은 권력 투쟁이었던 수많은 양민 학살 사건들의 은유이다. "좌시하지 않겠다"는 문장을 수차례 말하는 촌장의 어투는 우스꽝스럽지만 예사롭지 않다. '좌시'의 뜻이 뭔지도 모르는 악사와 마을 사람들은 그냥 입 조심 하는 것으로 얼렁뚱땅 넘긴다.

촌장은 공포정치를 펼치는 독재자 아이콘으로 기능한다. 그는 폐쇄된 마을에 들어온 외부자에게 전쟁이 종결되었다는 사실을 발설하지 말도록 협박한다. 촌장은 자신의 권력을 영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정보를 독점하고, 진실을 은폐하며, 거짓을 전파하고, 공포감을 확산하는 전형적인 독재자의 통치 철학을 체현하는 인물이다. 마지막 결전의 날에 벽장 안에 깊숙이 간직해온 일본 헌병 복장과 일본도를 꺼내 보임으로써 그의 정체가 명백하게 드러난다. 청산하지 못한 친일의 유산이 현재를 지배하여 불공정과 비정상이 판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순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모골이 송연해지는 장면이다.

더 끔찍한 건, 촌장의 결정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하고 호응하는 대다수 마을 사람들이다. 외부에서 온 악사로부터 이것저것 소식을 전해 듣거나 진기한 물건을 구경하며 혜택을 보아온 사람들이, 자신의 목숨을 부지해 보겠다고 악사를 천하의 빨갱이 첩자로 몰아간다. 타자를 수용하지 못하는 것이나 자신의 기득권을 위해 애먼 사람을 희생양으로 만들어온 우리 역사의 그림자를 영화가 드러내 보여준다. 악이 평범해지다 못해 일상적인 것이 되어버린 현 상황을 부끄럽게도 되돌아보게 한다.

영화는 호러의 법칙에 충실하다. '억압된 것은 없어지지 않고 귀환한다.' 숨겨왔던 비극은 어떤 방식으로든 부메랑처럼 돌아와 공동체를 위기에 빠뜨린다. 약속을 지키지 않은 어른들로 인해 아이들의 생존은 위협받게 된다. 이러한 호러의 법칙, 그리고 역사의 법칙은 현재 우리 사회를 짓누르는 억압의 얼굴로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집단 무의식의 공포를 자극하기 위한 원시적 제의들이 시각적으로 펼쳐져 영화는 오싹하다. 동시에 자각의 순간을 일깨우며 경건하게 만든다. 올해의 빛나는 데뷔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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