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리와 울림] 비판 없는 사회

1956년 경기도 화성생. 연세대 독문과.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대 철학박사. 계명대 총장
1956년 경기도 화성생. 연세대 독문과. 독일 아우크스부르크대 철학박사. 계명대 총장

'비판=인신공격'으로 받아들여

사태·사람 간 구별 못해 벌어진 현상

모든 말 개인에 돌리면 토론 불가능

악의 없는 건전한 비평 뿌리 내려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어느 소설가의 표절 문제가 사회에 깊은 파장을 일으킨 적이 있다. 내가 과거형으로 쓰는 것은 이 파장이 우리 사회 속 깊이 쌓여 있는 적폐를 뒤흔들어 놓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표절 논쟁과는 관계없이 이번 사건이 적나라하게 폭로한 한 가지 사실만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비평가들이 건전한 비판 대신 주례사 비평을 일삼은 것이 표절 사태에 이르게 된 주범이라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번 사건이 한국 문학의 풍토를 바꿔놓는 문학사적 사건이 되길 기대하지만, 그러지 못할 것 같다는 걱정이 앞서는 것은 왜일까?

문학 풍토가 바뀌려면 건전한 비평이 뿌리를 내려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근본적으로 비판에 대해 적대적이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주례사 비평'은 문학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학계, 기업과 공직 사회를 막론하고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 만연해 있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도 이처럼 '비판 없는 사회'로 머문다면, 이번과 같은 사건이 언제 또 어디에서 발생할지 모를 일이다.

왜 우리 사회는 유독 비판을 싫어하는 것일까? 우리 사회가 비판 적대적인 것은 비판을 개인적인 인신공격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중시하다 보니 종종 논의 대상인 '사태'를 '사람'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총장 선출 방식을 놓고 두 사람이 논의한다고 생각해보자. A는 총장 직선제가 대학을 정치판으로 만들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B는 이렇게 반박할 수 있다. 총장 간선제는 결국 힘 있는 몇 사람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문제가 있더라도 교수들의 의견을 반영하는 직선제가 좋지 않을까요? 그런데 A는 B의 선배 교수로서 평상시 잘 알고 지내는 사이이다. A는 B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반대하면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한다. 잘 아는 사이라면 어떤 사안에 대해서도 지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말을 반대하면 우선 기분부터 나빠진다. 논의를 하면 찬성과 반대 주장은 필수인데 반대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문화에서 A의 반응은 대체로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어!'이다. '나도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토론 문화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당신이 어떻게 공개적으로 그렇게 반대할 수 있어!' '다른 사람이 비판하는 것은 몰라도 당신만은 그래도 내 편이 되어야 하는 것 아냐!' 여기서는 논의하는 문제에 대해 '어떤' 말을 하였는가가 아니라 '누가' 그 말을 하였느냐가 중요한 것처럼 보인다.

모든 비판이 사람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여겨지는 사회에선 결코 건강한 비판이 있을 수 없다. 인신공격은 라틴어 구절로 '아트 호미넴'(Ad hominem)이라고 하는데 '개인으로'라는 뜻을 갖고 있다. 논의할 사태로부터 말하는 사람으로 우리의 주의를 돌려 비판하는 것이 인신공격이다. 예컨대 B가 A에게 '당신은 이사장하고 친한 관계이기 때문에 그런 주장을 하는 것이지요?'라고 말했다면, 이는 분명 인신공격이다. 조깅이 심혈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하는 어떤 과학자에게 '뚱뚱한 당신이 어떻게 그런 주장을 할 수 있어요'라고 비난한다면, 이도 인신공격이다.

이런 인신공격을 하지 않으려면 우린 '사태'와 '사람'을 구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모든 말과 문제를 '개인으로' 돌린다면, 어떻게 의견을 밝히고 토론할 수 있는가?

가정에서 아이들이 부모에게, 직장에서 부하가 상사에게, 국가에서 시민들이 위정자에게 자신의 의견과 철학을 떳떳하게 주장하려면 사태는 사태대로, 그리고 사람은 사람대로 대할 줄 알아야 한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우리도 서양 사람들처럼 껄끄러운 얘기를 할 때마다 '노 오펜스'(No offense!)라고 말하면 어떨까. '악의는 없어!' '인신공격은 아니야!' 이런 말에 상대방도 '논 테이큰'(None taken!) '개인적으로 안 받아들였어!'라고 말한다면 우리 사회에도 건강한 비판이 자리 잡지 않을까?

이진우/포스텍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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