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지구로 쏟아지는 태양에너지는 174PW(페타와트)쯤 된다고 한다. 좀 더 쉽게 환산하면 1천조W쯤 된다.(그래도 감이 안 잡히지만) 이 중 절반은 오존층에서 튕겨 가고 90Pw가 지구에 안착한다. 지표면에 도달한 전체 태양광의 1시간 분량만 전기로 환원해도 세계 각국이 1년 동안 쓰고도 남는 분량이 된다고 한다.
지표에 떨어진 햇빛 중 인류가 에너지로 활용하는 건 0.015PW에 불과하다고 하니 태양광은 말 그대로 인류 에너지의 '태양' 같은 존재인 것이다.
세계 각국 전력의 87%가 화석원료, 원자력에 의존하고 있다. 신재생에너지의 비율이 3%대에 머무르고 있는 우리나라의 화석연료, 원전 종속은 더 심각하다.
이런 태양광 블루오션을 놔두고 정부가 화석연료, 원전에 에너지 정책을 의존하는 것은 자원 안보 논리, 경제성(아직 검증은 안 됐지만), 통제의 용이성 때문이다. 여기에 원전에 목을 매고 있는 토건족들의 집요한 로비도 한몫한다.
이런 정책 기조에 '이의 제기'를 외치고 나선 사람이 있다. 대구시민햇빛발전소 최현복(58) 대표다. 네거티브 게임인 화석연료, 원전에서 벗어나 태양광을 시민의 에너지로 만들어 쓰자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최 대표를 지산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태양발전소 시민운동 닻을 올리다
2007년 초반 대구흥사단, 맑고푸른대구21, 에너지시민연대 등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모임을 가졌다. 날로 고갈돼 가는 에너지 위기를 시민운동 차원에서 접근해 보자는 취지였다. 시민햇빛발전소는 이 모임을 모태로 결성되었고 최 대표가 모임의 좌장이 되었다.
"당시 대구시가 솔라시티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신재생에너지사업을 펼치고 있었어요. 민간, 시민운동 차원에서도 청정에너지운동이 필요한 시점이었죠."
시민햇빛발전소는 출범하자마자 태양광발전소 건설에 착수했다. 100여 명의 시민이 주주로 참여했다. 주주출자 방식은 전국에서 최초로 시도된 모금 형태였다. 엄마가 자녀의 이름으로 가입하기도 하고 결혼 20주년 여행비용을 떼 출자한 시민운동가도 있었다.
이 과정을 거쳐 2008년 9월 30일 드디어 수성못 상단공원에 시민햇빛발전소 1호기가 탄생했다. 건립 비용으로 2억4천만원이 투입됐고 매년 3만7천㎾h의 생산 체계가 갖춰졌다. 이렇게 첫 삽을 뜬 시민햇빛발전소는 2012년 수성구 두산동주민센터 옥상에 대학생들의 출자로 2호기, 올해 북구 동호동 도시철도 3호선 차량기지 환승주차장에 3, 4호기가 설치됐다.
5호기 건설도 적극적으로 추진 중이다. 시민햇빛발전소에서 적절한 후보지를 추천하면 대구시에서 적극적으로 협조해주기로 약속된 상태다. 대구스타디움 주차장 같은 공공시설, 공공용지가 우선 대상이다.
5호기 건설계획 확정과 동시에 시민햇빛발전소에서 사업비, 수익률을 공개하고 모집공고를 내면 시민들이 주주로 참여할 수 있다.
◆풀뿌리 에너지 민주주의 모색
지금 정부의 에너지정책은 원전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 시민햇빛발전소의 취지는 국가가 주도하고 있는 에너지 정책을 시민, 지역 중심으로 바꿔보자는 데 있다.
"지금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서 지역과 마을, 개인은 철저히 배제되고 있어요. 이제 국가 주도 틀에서 벗어나 '우리 집 전기는 우리가 만들어 쓴다'는 인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유럽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협동조합을 결성해 태양광 모듈을 설치해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물론 생산단가가 정부가 공급하는 전기보다 비싸다. 그러나 주민들이 달콤한 경제 논리에 유혹되지 않고 '우리 마을 전기는 우리가'라는 슬로건에 동참함으로써 풀뿌리 에너지 정책 기조를 유지해가고 있는 것이다.
최 대표도 에너지시민운동이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인식 전환이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경제, 수익 논리로 접근해서는 태양광 발전이 크게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태양광으로 에너지를 자급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성이 현재로선 없습니다. 단지 우리 집 냉장고, TV전기는 우리가 만들어 쓴다는 취지로 접근해야 합니다."
시민들이 이런 캠페인을 통해 에너지운동에 발을 딛게 되면 1W의 전기가 소중해지고 한 등의 전기가 귀하다는 인식이 저절로 자리 잡게 된다는 것이다.
◆태양광 정책을 가로막는 장벽들
제주도가 '탄소제로섬'을 비전으로 제시하고 서울시가 '원전 하나 줄이기' 캠페인을 벌이는 등 지자체들이 신재생에너지 확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인천, 부천, 경남의 시민단체들도 에너지 협동조합을 결성해 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민간 주도 에너지 시장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최근 정부에서 내놓은 태양광 관련 정책들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정부는 2011년에 '발전차액제도'를 폐지했다. 이 제도는 소규모 태양광 시설에 적정 이윤을 보장해주는 제도다. 인센티브가 폐지되면서 단체들이 투자를 꺼리고 사업이 급속도로 위축됐다.
"정부는 처음엔 소규모 태양광시설에 15년간 적정 단가를 보장해줬어요. 대구에서 시민햇빛발전소가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것도 정부가 4.16%라는 고정이윤을 보장해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근에 적정 단가 체계를 흔들어 버리고 정부 물량을 풀면서 시민단체들이 팔 수 있는 전기가 대폭 줄었어요. 이른바 '태양광 대란'입니다. 정부가 '투자하면 망한다'고 신호를 주는데 누가 사업을 벌이겠습니까."
최 대표는 현재 대구시가 벌이고 있는 신재생에너지사업에 대해서도 고언을 잊지 않았다. 대기업 태양광 투자 유치, 물량 위주 정책에서 벗어나 가정, 마을, 시민단체에도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져달라고 주문했다. 햇빛의 가장 큰 미덕은 무제한, 무한 재생이라는 점이다. 이런 장점이 에너지 개발로 연결된다면 그야말로 포지티브게임, 윈윈전략이 될 것이다.
최 대표는 태양광사업이 최근 첫발을 떼었지만 아쉽게도 현재는 정부의 경제 논리에 막혀 정책은 답보 상태라고 말한다.
"정부는 이제 생산단가에만 얽매이는 '셈틀'에서 벗어나 에너지 대계라는 '큰 틀'에서 정책을 수립할 때입니다. 정부가 매너리즘에서 벗어날 때까지 에너지 농부들은 열심히 도심의 '햇빛 텃밭'을 일구어 갈 것입니다."
한상갑 기자 arira6@msnet.co.kr
◆최현복 대표 걸어온 길=1975년 영남공전업전문대학을 졸업하고 건국대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했다. 동 대학원에서 도시계획학 석사 학위를 받고 나남출판사에서 편집장으로 일했다. 일찍부터 시민활동에 참여해 대구흥사단, 전국에너지시민연대, 맑고푸른대구21추진협, 대통령 자문 지속가능발전위 등에서 활동했다. 2011년부터 2년 동안 국민권익위 부위원장을 역임했고 2008년부터 대구시민햇빛발전소 대표를 맡고 있다. 현재 대구대 초빙교수로 있다.
◇신재생에너지의 천국 독일
독일의 태양광발전시설은 130만 개. 여기서 생산되는 전력은 모두 2.5GW로 800만 가구의 전력을 담당할 수 있을 정도다. 신재생에너지 발전시설의 절반이 일반 시민, 농민단체들에 의해 설치됐고 이곳에서 53GWh(원전 약 50개)의 전기가 만들어진다.
이런 시민조합의 규모가 커지면서 기업 수준으로 규모를 늘려가는 단체도 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징엔시의 '졸라 콤플렉스'다. 이 기업은 4년 동안 4천㎾h의 태양광발전소를 건립했고 연간 매출액이 30억원에 이른다. 징엔시는 2030년까지 지역 에너지를 100% 재생에너지로 공급한다는 목표를 세워 놓고 있다.
독일에서 태양광에너지가 국민적 관심사가 되다 보니 재미있는 이벤트도 생겨났다. 대표적인 것이 '솔라 분데스리가'다. 축구 리그를 본뜬 이 용어는 독일 전역의 도시들이 태양에너지 발전량을 겨루는 일종의 에너지 리그다. 1위를 한 도시엔 챔피언 타이틀과 함께 두둑한 상금도 주어진다.
독일에서 신재생에너지 정책의 모든 결론은 프라이부르크로 내려진다. '세계의 환경 수도'로 불리는 이 도시는 전체의 70%가 녹지로 되어 있다. 도심엔 자동차 진입이 금지되고 자전거와 전차만 다닌다.
인구는 20만 명 남짓하지만 '태양에너지 시민조합'이 활성화되고 있다. 대부분 축구장 관중석 지붕엔 집광판이 설치돼 있고 바데노바 축구장은 세계 최초 에너지 자립형 스타디움으로 이름을 올렸다.
이런 외형적 규모, 성과 못지않게 우리가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은 이런 모든 정책이 시민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상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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