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창 모임을 한다고 해서 참석했더니, 40년 세월을 격하고 만난 어릴 적 친구들이 주로 묻는 인사는 "신부로 사는 게 힘들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세속의 명리를 버리고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살겠노라고 하는 사람이니 남보다 고생도 더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여느 사회인보다 편하면 편했지 그다지 고생스럽지가 않다. 홀로 살다 보니 자식 걱정도 없고, 죽을 때까지 신부로 살기를 바라는 마당에 앞날 걱정도 인연이 없다. 집 걱정, 끼니 걱정도 하지 않으니 때로는 이리 편히 살아도 되나 싶을 지경이다. 지난달에는 신부라면 일 년에 한 번 의무적으로 하게 되어 있는 피정(避靜)을 다녀왔는데, 세속의 소란을 떠나서 침묵 가운데 자신을 돌아보며 한 주간을 보내는 것이다. 기도 많이 하고 오라고 이 비용마저도 신자들이 이바지해 준다. 어지간한 부자나 권력자라도 누리기 힘든 호사가 아닐 수 없다.
고생이랄 것까지는 없지만, 성직자 노릇 가운데 좀 불편하다 싶은 경우를 굳이 들자면 그것은 몸이 아플 때이다. 병구완을 해 줄 사람이 없고, 투정도 좀 하고 위로를 받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그럴 대상이 눈앞에 없는 것이다. 큰 병은 없지만 잔병치레는 자주 하는 편이라 이 작은 불편은 거의 매년 경험하고 있다.
감기라도 돌면 어김없이 재채기를 하기 때문에, 신문'방송이 연일 메르스 경보를 울리자 걱정이 되었다. 사망자가 나오고 대구 지역에도 확진 환자가 생겼다는 기사가 보도될 즈음, 목이 아프고 기침이 나기 시작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서 종합병원에 갔더니 임시로 만든 격리시설에서 온갖 검사를 하면서 겁을 준다. 그렇게 하루 온종일 걱정을 시켜 놓고는 의사 선생님 왈, "그냥 감기입니다. 걱정 안 하셔도 되겠습니다"란다. 열이 없었던 것이다.
온 국민이 한 달 넘게 걱정을 했고 돌아가신 분들마저 있으니, 하루 근심한 것을 가지고 애먹었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 하루가 지나고 한 사나흘 콜록거리면서 무척 부끄러웠다. 성직자의 검은 복색은 상복(喪服)이다. 죽음을 뜻하는 것이다. 세속에 죽고 욕심에 죽어서, 남을 살리고자 자기 목숨을 내놓을 각오로 산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아예 옷으로 지어서 입고 다닌다. 그런데 바로 그 옷을 입고 벌벌 떨면서 병원에 갔던 것이다. 혼자 살면서 갖은 생활의 근심을 면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여차하면 언제든지 이 한목숨을 놓을 수 있기 위해서가 아닌가?
건강은 좋은 것이다. 건강을 마다하고 병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삶의 보람은 좋은 것을 많이 가지는 데 있지 않고 이미 가진 좋은 것들을 어떻게 쓰느냐에 있다. 건강을 잃을까 걱정하다가 정작 건강한 몸으로 무엇을 하면 좋을지 생각하지 못한다면, 건강을 누리지 못하는 많은 이들에게 죄를 짓는 것이 된다.
정태우 천주교대구대교구 문화홍보실장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국정원, 中 업체 매일신문 등 국내 언론사 도용 가짜 사이트 포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