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득한 날에 / 하늘이 처음 열리고 /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로 시작하는 이육사 시인의 '광야'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학교에서 한 번은 배웠던 시이다. 학교에서 일제강점기의 문학 작품을 공부하다 보면 해석이 늘 고정되어서 다양하게 읽기 어려운 면이 있다. 학생들도 '봄, 해, 그날'과 같은 시어가 나오면 즉각적으로 '조국 광복'이라고 하고, '겨울, 눈보라, 어둠'과 같은 시어들이 나오면 '일제 치하의 현실'이라고 답을 한다. 문제는 학생들이 일제강점기의 시가 아닌 시어들에도 이와 같은 도식을 대입한다는 것이다.
온 겨울의 전세계(全世界)를 돌아다니고
이제 와 위대한 적막(寂寞)으로서
쌓이는 미래(未來)의 이 눈빛 앞에
나의 마음을 어둠으로 덮노라.
여기에서 '눈'과 '어둠'은 인간의 눈으로 보는 것이 만들어 내는, 마음을 어지럽히는 분별심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다. 눈으로 덮인 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화자는 마음의 안식을 얻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시의 공식에 익숙해진 학생들은 '어둠=일제 치하'로 대입을 하여 일제 치하가 계속되고 있는 상황을 이야기한다는 해석을 하기도 한다. 일제 치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1960년대에 발표된 시임에도 말이다.
다시 '광야'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지금 눈 내리고 /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라는 구절에서 당연히 학생들은 '눈 내리고'를 일제 치하로 해석을 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나오는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에서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조국 광복'으로 해석을 한다. 이육사 시인이 실제로 무장 독립 투쟁을 했던 지사였기 때문에 그런 점을 감안하면, 그렇게 해석하는 것에 아무 문제가 없고, 실제로 대부분 학교에서 그렇게 배우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석할 경우 금세 '다시 천고 뒤에'가 걸리게 된다. 아주 똑똑한 학생들은 '그럼 천고(천 년 혹은 긴 시간) 뒤에 광복이 오기를 바란다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초인이 왜 백마를 타고 오는 거지?' 하는 의문을 가지기도 한다.
시도 나름의 논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독립운동을 했던 지사가 독립의 시점을 천 년 뒤로 생각한다는 것은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조국의 광복으로 해석하는 것은 확실히 잘못된 것이다. 시의 전체 맥락을 보면 '광야'는 까마득한 태초의 시간부터 먼 미래까지의 우리 땅과 우리 민족의 영원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눈 내리는 '지금'이 시를 쓴 일제 치하로 해석을 한다면 조국의 독립은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매화 향기'를 통해서 확인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시에서 일제 치하에서 광복을 염원하는 시로 보지 않아도 되지만 굳이 광복과 연관을 시키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은 누굴까? 왜 우리에게 더 익숙한 적토마도 아니고, 천리마도 아닌 백마를 타고 오는 것일까? '백마'는 세계 여러 나라의 신화에서 수호성인이나 구세주를 태우는 말로 나온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땅에 우리 민족만을 구원하는 사람이 아니라 인류를 구원할 사람이 나온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불교에서 말하는 여러 부처 중 우리나라 민중들이 가장 좋아하고 희망을 주는 부처는 바로 미래에 올 것으로 예정된 '미륵불'이다.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을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은 늘 가슴 한 곳에 희망을 품고 살 수 있다는 것을 이야기한다.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그 사람이 오지 않더라도 말이다.
능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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