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화가, 말 그대로 '번성'해 '화려'한 거리를 뜻한다. 거리의 번성을 좌우하는 것은 상업이다. 상권이 얼마나 크고 또 발달했느냐의 얘기다. 화려함은 그 거리의 가로등과 간판 조명 등이 모여 발하는 명도(빛의 밝기)가 얼마나 높은지로 가늠할 수 있다.
지금 대구에서 번화가를 열거하라 하면 동성로가 첫 손에 꼽힌다. 그러나 1970년대 까지만 해도 향촌동이 대구의 제일 번화가였다. 그 이전에 근대적 개념의 번화가를 대구에 처음 형성한 곳이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 이전까지 대구의 대표 번화가였던 북성로다. 북성로와 향촌동은 중첩된 시기에 번화가로 명성을 날렸는데, 시기적으로 먼저 번성한 곳은 북성로라고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번화가를 평가하는 기준은 하늘에 반짝이는 '별'의 등급을 재는 기준과 비슷하다. 북성로는 지난 근대 시기에 대구를 가장 먼저 비춘 별이었다.
◆요즘 뜨는 새 문화예술골목, 북성로
사실 대구역과 바로 인접한 곳은 태평로다. 대구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각종 물류를 보관하는 창고가 태평로 곳곳에 들어섰고, 태평로는 바로 밑에 붙어 있는 북성로 상권에 물류를 공급하는 역할을 했다. 물론 북성로에도 이런저런 용도의 창고가 많았다.
이제는 비어 있는 옛 창고들이 요즘 북성로에 활력을 불어넣는 공간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구 중구청의 근대건축물리노베이션사업의 최근 결과물인 '아트숍 뜨락'은 1950년대 창고 건물을 공예 중심 박물관으로 리노베이션한 곳이다. 지역 예술가들도 저렴한 임대료, 소음 등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작업을 할 수 있는 장점 등을 언급하며 최근 북성로에 작업실을 차리고 있는데, 옛 창고 공간을 개조하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 1950년대만 해도 북성로와 태평로 일대에 과일을 도매로 유통하는 청과시장이 있었는데, 과일 창고로 쓰이다 계속 비어 있던 공간에서 조각가로 활동하고 있는 손영복 작가가 최근 '복아트팩토리'를 차렸다. 이곳에는 손 작가의 작업실 외에도 두 개 공간이 더 자리해 있다. 음악과 미술을 즐길 수 있는 펍(술집) '조스바'가 들어섰고, 대구 남구 계명대 대명캠퍼스 인근에 있던 '독립출판물서점 더폴락'이 최근 이사를 왔다.
이들은 역시 바로 옆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겸 자전거방 '장거살롱', 북성로의 명소 카페인 '믹스카페'와 '삼덕상회', 그 외 지역 예술가들이 곳곳에 차린 작업실 등과 함께 북성로를 점차 문화예술골목으로 변모시켜나가고 있다.
◆대구 관광 중심지로, 대구 변화 출발지로
번화가의 추억만 남아 있던 북성로에 다시 사람들을, 그러니까 대구의 젊은이들은 물론 전국 및 해외의 관광객들을 모으고 있는 단체 및 공간이 있다. '문화마을협동조합'과 게스트하우스 '더 스타일'이다.
"올드타운에 사람들을 계속 유입시키는 것이 저희의 장기적인 목표입니다. 여기서 올드타운이란 북성로뿐만 아니라 옛 대구읍성 안의 지역을 모두 포함해요. 일단은 북성로에 게스트하우스 등 몇몇 공간을 먼저 만든 겁니다." 김성훈 문화마을협동조합 대표는 2013년 7월 대구종로초등학교 인근에 게스트하우스 더 스타일의 문을 열었다. 지난해에는 인근 1960년대 한옥 건물에 수영장을 갖춘 한옥형 게스트하우스 '더 한옥&스파'를, 바로 옆 1950년대 창고 건물에 레스토랑 '키친1916'을 마련했다. 세 공간은 이제 매년 4만 명 규모의 방문객을 소화하고 있다. 문을 연 지 겨우 2년 만의 성과다.
이게 단순히 공간만 있어 가능했던 성취는 아니다. 북성로가 기반인 문화마을협동조합에서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다양한 콘텐츠를 생산하며 거들고 있다. 그래서 게스트하우스는 단순한 숙박업소가 아니게 됐다. "사람들이 멀리서 게스트하우스를 찾아오는 것은 그저 자러 오는 것이기보다는 뭔가를 느끼러 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잠만 잘 거면 뭐하러 호텔과 여관을 놔두고 게스트하우스에 올까요? 이들에게 뭔가를 느끼게 해 주려면 유물과 유적 등 단순히 눈으로만 보는 관광 요소가 아닌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콘텐츠를 제공해야 합니다. 이걸 문화마을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이 계속 생산하는 것이죠." 곧 접할 수 있는 콘텐츠로는 올해로 3회째 개최되는 물총축제가 있다. '대구워터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다음 달 9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북성로 골목 일대에서 열린다. 지난해처럼 물총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공간과 함께 대형슬라이드도 설치된다. 이 밖에도 문화마을협동조합은 수시로 플리마켓(벼룩시장), 외국인과 함께하는 글로벌 파티 등을 열고 있다.
김 대표는 "현재의 4만 명에서 확대해 수년 내로 30만 명까지 방문객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겠다"고 목표를 밝혔다. 그런데 이 30만 명 중 10만 명은 대구 사람이어야 한단다. 그래야 대구 사람들과 전국 및 해외에서 온 방문객들이 서로 교류하며 저마다 지니고 있는 문화의 새로운 버전을 탄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대구 사람들은 방문객들이 알려준 여러 문화 요소들을 대구 버전으로 만들게 될 것이고, 방문객들도 저마다 사는 곳으로 돌아가 대구와 한국에서 습득한 문화 요소들을 역시 저마다의 버전으로 생산할 것이라는 얘기다. "그렇게 겪는 변화 자체가 의미 있습니다. 이를 통해 대구에 대한 고여 있고 답답하다는 이미지와 인식을 조금씩 바꿔나가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글 사진 황희진 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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