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성(城, 성벽을 가리키는 재 성)로, 그리고 북성(晟, 밝을 성)로
허물어진 대구읍성의 북쪽 골목길을 가리키는 북성로의 전성기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교통 관문으로 따지면 지금은 동대구역이 대구의 대표 관문이지만, 산업화 시기 이전만 해도 대구역이 대구의 물자 및 여객 운송 관문 역할을 맡았다. 대구역이 들어선 것은 1905년이고, 경부선이 통과하는 대구역사 남쪽에 북성로가 있었다. 이때 북성로는 번화가로 나아갈 요건을 갖춘 것이다.
북성로는 1908년 대구 최초의 신작로로 정비됐다. 이후 1935년 대구 최초로 도로포장이 시행된 곳도 북성로다. 1909년에는 순종 황제가 와서 북성로를 걸었다. 현재 조성되고 있는 순종황제어가길의 역사적 근거다. 1932년에는 당시 북성로 상권이 얼마나 번성했는지 후대에 전하게 되는 미나카이 백화점이 들어섰다. 이 백화점에는 당시 대구에 있는 건물 중 유일하게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었다. 1938년에는 당시 북성로의 명도가 얼마나 높았는지 보여주는 수은등이 거리 곳곳에 설치됐다. 현재 전해지는 대구 근대사 사진 중 북성로 사진이 유독 화려한 까닭이다. 흑백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해방을 거치고 한국전쟁을 지나며 북성로는 공구골목으로 변신했다. 주변에 미군보급창과 미군부대 등이 주둔했고, 이곳에서 흘러나온 대량의 군수물자가 기반이 됐다. 이 시기 즈음에 북성로는 '삐까뻔쩍'한 번화가의 성격을 바로 옆에 있는 번화가인 향촌동에 물려줬다. 다시 1980년대에는 동성로가 대구 최고 번화가의 지위를 향촌동으로부터 이어받았다. 불과 30여 년 전의 일이다. 동성로 다음은 어디일까.
황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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