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영국 여행 길라잡이] 셰익스피어의 고향 스트라트포드

셰익스피어 생가.
셰익스피어 생가.
셰익스피어 무덤.
셰익스피어 무덤.
셰익스피어 시대 극장 터 발굴 후 재현해 복원한 글로브 극장.
셰익스피어 시대 극장 터 발굴 후 재현해 복원한 글로브 극장.

설명이 필요 없는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스트라트포드 어폰 에이본은 런던에서 걸어서 사흘, 말 타고 이틀이 걸리는 시골이다. 차로도 2시간은 족히 걸린다. 이런 시골에서 장갑공의 아들로 태어난 셰익스피어가 어떻게 해서 세계인을 사로잡는 작품을 쓸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은 스트라트포드를 갈 때마다 아주 심각하게 드는 의문이다. 더군다나 셰익스피어가 교육을 받았다는 기록은 영국 내의 공식 기록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다. 당시 셰익스피어 고향에 존재하던 가톨릭 예수회 학교의 기록에도 없고 대학교라고는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밖에 없던 시절인데 두 대학교 기록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만일 한 달이라도 수학을 했다면 반드시 기록이 남아 있을 터인데 말이다.

그렇다면 셰익스피어는 전혀 공식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말인가? 가끔 역사에는 독서만의 독학으로 엄청난 지식을 쌓은 사람도 없진 않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거의 400년 전 스트라트포드 시골에 그런 지식을 쌓을 만한 책이 있었을 리도 없고 있었다고 해도 어떻게 그런 전문지식을 독서로만 소화해서 작품 속에 녹여 넣을 수 있었는지 정말 불가사의하다. 셰익스피어 작품에 나오는 천문학, 군사, 의학, 법학, 종교, 수사학 같은 지식은 제대로 공부해야 이해할 수 있는 지식인데 셰익스피어는 완벽하게 소화해서 작품에 사용했다.

'햄릿'의 무대인 덴마크나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인 이탈리아를 셰익스피어가 다녀왔다는 기록도 없는데 어떻게 그런 곳을 작품 배경으로 썼는지도 의문 중 하나다. 더군다나 귀족사회와 궁정의 관습과 예법을 완벽하게 터득하지 않으면 쓸 수 없는 내용이 작품 한두 군데 나오는 것이 아니다. 스트라트포드 시골 촌뜨기가 아무리 천재적인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런 글을 쓴다는 건 불가능할 거라는 생각이 장갑공 아들 셰익스피어의 존재를 의심케 하는 제일 큰 요인이다. 이렇게 셰익스피어를 의심하는 사람들을 일러 옥스퍼드파라고 하고 그래도 맞다는 사람들을 스트라트포드파라고 지칭한다.

옥스퍼드파 사람들이 뭐라고 떠들어도 스트라트포드에는 온 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더군다나 작년이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 내년이 사망 400주년이라 더더욱 늘어나고 있다. 일거리를 만들기 좋아하는 영국인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은 핑계가 없다. 해서 영국은 3년간이 셰익스피어 축제기간이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나라들은 물론 공용어로 쓰는 영연방 국가들도 축제 중이다.

스트라트포드 헨리가의 생가는 당시로는 상당히 큰 저택이었다. 튜더 시대 서민 집들은 모두 단층집이었고 천장도 낮다. 그런데 셰익스피어 생가는 2층에다가 천장도 높다. 셰익스피어의 아버지는 비록 장갑공이었지만 상당한 규모의 공방을 유지했다. 결국 돈을 많이 벌어 마을 회계담당도 하고 나중에는 시장까지 한다.

현재 생가 내에 있는 각종 가구들은 셰익스피어와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그냥 당시 물건들을 모아 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래도 우리들은 그 시대의 사람들이 이런 가구들을 사용하면서 살았구나 하는 것을 실감하면서 볼 수 있다. 입구 첫째 방 돌바닥은 원래 것이라고 안내인이 강조하는데 이 돌을 400년 전에 셰익스피어가 밟고 다녔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사실 다시 한 번 내려다보게 된다.

셰익스피어 생가를 방문하면 다른 것은 그냥 지나쳐도 '퍼스트 폴리오'(Fir st Folio)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 생가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는 현대식 건물 첫 번째 방 중간 유리 상자에는 큰 책이 하나 펼쳐진 채 들어 있다. 바로 이것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38편 중 36편이 실린 전집이다. 셰익스피어 시대에는 희곡을 모아 출판하는 시대가 아니었다. 그런데 셰익스피어 연극의 배우이자 친구였던 존 헤밍과 헨리 콘델이 셰익스피어 사후 7년 뒤인 1609년 희곡집을 발간한다. 당시는 판권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절이고 희곡 모음집이 팔리던 시절이 아니라 아무도 시도를 안 했었는데 의외로 성공을 해서 두 배우는 큰돈을 벌었다. 당시 런던에서 상연된 연극 중 이름이 알려진 작품만 3천여 편인데, 두 배우의 노력으로 그중 36편이 이렇게 고스란히 남아 오늘날 우리들이 감상하고 있다. 바로 그렇게 발간된 1천 권 중에서 현재까지 살아남은 폴리오는 228편인데 그중 한 권이 생가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이다. 미국에 147권이 있는데 그중 82권이 유전으로 거부가 된 헨리 클레이 폴저가 수집해 지은 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다. 12권은 일본 메이지 대학에, 5권은 영국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지금은 거의 모두를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어 거래되지 않지만 학교 운영비를 위해 옥스퍼드 오리올 칼리지가 석유 재벌 폴 게티한테 판 350만파운드가 최고의 가격이었다.

이제 발길을 셰익스피어의 무덤으로 돌릴 차례이다. 작가의 무덤은 마을 다른 편에 있는 성삼위 성당에 있다. 특별하게 셰익스피어 일가의 무덤은 성당 내에서 가장 성스러운 곳이라는 재단이 있는 지성소(至聖所) 앞에 있다. 그만큼 중요한 인물이라는 이유 때문인가 아니면 재력이 많았다는 뜻인가? 바닥에 묻혀 있는데 묘비명이 특이하다. '내 무덤을 건드리지 말라. 뼈를 움직이는 자에게 저주가 내릴 것이다'라는 섬뜩한 내용이다. 왜일까? 갈 때마다 느끼는 의문이다.

재영 칼럼니스트'여행 작가 johankw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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