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맥도 모르는 새누리당

'맥도 모르고 침통 흔드는 격'이라는 속담이 있다. 일의 요령도 모르면서 아는 척 덤빈다는 뜻인데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나대는 꼴을 비유하는 말이다. 누구나 살면서 이런 경우를 경험한다. 의욕이 앞선 나머지 전후 사정이나 때를 모르고 불쑥 나섰다가 소득은커녕 망신살 뻗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맥도 모르는 사람이 정작 목숨을 다루는 의사나 민생을 책임지는 정치인이라면 문제는 달라진다. 의사나 정치인의 경우 행동거지나 판단 하나하나에 많은 것이 좌우된다. 그만큼 책임이 무겁고 파장이 크다는 말이다. 특히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인은 공익을 최우선에 두어야 할 공인이라는 점에서 역할과 소임이 더 막중하다. 그 대가로 혈세를 들여 우대하고 존경하는 것이다.

그런데 실상 정치를 맡겨놓은 국회의원에게 그만한 가치와 효용성이 있는지 따져보면 입이 옆으로 삐죽 틀어진다. '마누라와 국회의원의 공통점'이라는 토막글이 SNS에서 눈길을 끈 적이 있다. '하여간 말이 많다' '내가 선택했지만 후회하고 있다' '아는 체도 하지 않다가 필요할 때면 아양을 떤다' '할 일이 많아 바빠 죽겠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엔 매일 노는 것 같다' '말로는 도저히 상대가 안 된다'는 우스갯소리다. 멀쩡한 부인들 흉을 본다는 항변도 있겠지만 유머로 그냥 웃고 넘길 일이다. 압권은 마누라가 국회의원보다 나은 점은 '밥은 해 준다'와 국회의원이 마누라보다 나은 점은 '4년마다 갈아치울 수 있다'는 대목이다. 이런 풍자가 입에 오르내리는 것만 봐도 정치인들에게 후한 점수를 주기란 어렵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최근 "경상도 국회의원은 동메달이고, 수도권 국회의원은 금메달"이라고 발언해 공분을 샀다. 김 대표가 한 말의 의미를 모르는 지역민은 없을 것이다. 지역정서에 기대 손쉽게 금배지를 단 지역 국회의원은 아무래도 값어치가 떨어지니 후히 대접할 필요가 없다는 뜻일 것이다. 지역 국회의원을 대놓고 평가절하하든, 함량 미달이라고 욕하든 상관없다. 공천만 신경 쓰면 4년은 그냥 무사통과니 이런 비아냥이 귀에 들어오겠나. 하지만 의원 개개인을 떠나 새누리당이 제대로 지역 민심을 읽고 공당 역할을 했는지부터 따져보는 게 순서다.

임명직 당직자 인선에서 경상도 의원은 배제하겠다는 발상이 여당 내부에서 공공연히 나오는 상황을 달리 표현하면 '윔블던 현상'이다. 경제학 용어로 멍석 깔아놨더니 엉뚱한 사람들이 잔치판을 벌인다는 의미다. 'TK 홀대'가 지역민이 자초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이런 꼴이 지속된다면 누가 손해 보는 장사 하겠나. 다음 선거에서 '대폭 물갈이'라는 밥상으로 되돌려 주면 된다.

지도자들이 공연히 분란만 일으키고 '배신의 정치' 같은 말을 내뱉는 자체가 민심을 자극하고 어지럽히는 일이다. 새누리당이 국민이 바라는 맥을 제대로 알았다면 공무원연금 개혁을 망치고 사사건건 반목하며 일을 키우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마디로 대통령부터 여당 지도부까지 현명하지 못하다는 말이다.

새누리당이 짚어야 할 맥은 바로 민심이자 민생이다. 지지를 얻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맥도 모른 채 엉뚱하게 용만 쓰는 것은 바른 정치가 아니다. 마키아벨리는 '현명한 지도자는 위기 자체를 막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위기가 닥쳤을 때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것도 지도자의 몫이자 역량이지만 사전에 위기를 막는 지도자가 더 현명하고 유능하다는 뜻이다. 그러려면 덕과 도덕에 기초한 리더십이 절대적이다. 그런데 집권 당정청은 위기를 막기는커녕 지뢰만 골라 밟는 짓을 거듭하고 있다.

새누리당에게 '지지를 얻는 것은 쉽다. 하지만 계속해서 그 지지를 유지하는 것은 어렵다'는 말을 들려주고 싶다. '미국의 민주주의'를 쓴 프랑스 정치사상가 알렉스 드 토크빌의 말처럼 '부도덕한 자가 위대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수긍하고 용인할 유권자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서종철/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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