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살충제 사이다' 영장 발부…경찰 구속영장으로 본 '사전 재구성'

프로파일러 "박 할머니 분노 한꺼번에 폭발 경향"

'농약 사이다' 사건의 피의자 박모 할머니가 20일 오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대구지방법원 상주지원 제1호 법정에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경찰은 어떤 식으로 박모(82) 할머니의 행적을 확인하고 있는 것일까? 박 할머니에 대한 구속영장에 적시된 혐의 사실을 토대로 '그날'을 전후한 상황을 재구성했다.

지난 13일 점심시간, 초복을 맞아 마을 사람 20여 명과 함께 닭죽과 음료수 등을 나눠 먹은 박 할머니는 피해 할머니들과 어울려 소액을 건 화투를 치다 이 중 1명과 다퉜다. 이후 할머니는 오후 7시쯤 집으로 갔다.

집으로 돌아온 박 할머니는 자신의 집에 보관하고 있던 살충제를 자양강장제 빈 병에 담은 뒤 전동 스쿠터를 타고 마을회관으로 가 냉장고에 보관된 먹다 남은 사이다 페트병에 섞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박 할머니는 피해자 가운데 신모 할머니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이 있었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 농지임차 과정에서 임차료 문제로 신 할머니에 대해 섭섭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는 것이다. 죽여야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고 마을회관을 찾는 다른 할머니들이 피해자가 돼도 상관없다는 생각마저 가졌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경찰은 말했다.

다음 날인 14일 오전 11시 30분쯤, 박 할머니는 이번 사건의 피해자 중 한 명인 민모 할머니집에 놀러갔다. 그리고 또 다른 피해자인 이모 할머니가 민 할머니집에 찾아오자 함께 TV를 봤다.

이후 오후 2시 30분쯤, 이모 할머니와 민모 할머니는 사건이 일어난 마을회관으로 갔다. 박 할머니는 이들과 같이 가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 마 가루를 타 먹은 뒤 전동 스쿠터를 타고 마을회관으로 갔다.

마을회관에 도착한 박 할머니는 피해자 중 한 할머니가 냉장고에서 사이다를 들고 와 "나눠 마시자"고 권하자 "마 가루를 먹고 와 안 마시겠다"고 거절했다.

하지만 다른 할머니 6명은 사이다를 나눠 마셨고 이후 모두 거품을 토하며 의식을 잃었다.

오후 2시 50분쯤 피해자 중 신모 할머니가 고통을 호소하며 마을회관 밖으로 뛰쳐나간 뒤 계단에 쓰러졌고, 마침 그 앞을 지나던 마을 주민 박모 씨가 이를 발견, 119에 신고했다. 출동한 구조대원들에게 마을회관 안에 피해자들이 더 있다는 얘기를 박 할머니는 당시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고 경찰은 지적했다.

출동한 구조대원들에 의해 신모 할머니가 병원으로 이송됐고, 현장에 있던 박 할머니가 아닌 마을 이장이 오후 3시 45분쯤 마을회관 내에 쓰러져 있던 나머지 할머니들을 발견, 119구조대에 의해 모두 병원으로 실려갔다.

경찰 관계자는 "프로파일러들을 투입한 결과, 박 할머니가 과거 생활에서 겪은 일들로 인해 분노 등의 감정을 한꺼번에 폭발시키는 경향이 있다는 결과도 나왔다"고 했다.

상주 고도현 기자 dor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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